북유럽 덴마크의 근·현대역사
북유럽 덴마크의
근·현대역사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1863년~현재)
덴마크는 1863년 왕위에 오른 크리스티안 9세Christian IX(1863~1906년 재위)에 의해 세 번째 왕조인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가 창설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티안 9세가 등극한 1863년 덴마크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킨 뒤에 독일연방에 속해 있던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역을 덴마크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동맹을 맺고 덴마크를 공격하여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를, 홀슈타인은 오스트리아가 통치하기로 합의했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농업의 집단화(협동농장)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1898년 전국 노동자연합과 고용주협회가 구성되는 등 근대사회로의 이행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시기에 근대적 정당으로서 1871년 사회민주당(노동자 중심)과 1880년 자유민주당(농민 중심)이 창당되었고, 이들 두 정당을 주축으로 한 개혁주의자들이 1901년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근대 입헌정치가 개막되었다.
1914년 6월 28일에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의 후계자가 세르비아의 국민주의자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를 내리면서 1차 세계대전World War Ⅰ(1914~1918)이 발발했다. 덴마크는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는 고초를 겪게 됐다. 1918년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의해 패전하자 전쟁이 끝나고, 1920년 덴마크는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북 슐레스비히를 되찾을 수 있었다. 덴마크는 세계대전 중인 1915년 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선거제도(25세 이상 남·여에게 투표권 부여)가 도입됨으로써 민주제도가 출범하였다. 그 후 사회민주당과 급진 자유당(1905년 창당, 소지주·지식층 중심)의 오랜 연정(1929~1940년)이 지속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1940년~현재)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World War Ⅱ(1939~1945)이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및 재산을 파괴한 이 전쟁에서 덴마크는 1940년 4월 독일에 의해 점령을 당함으로써 많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 필요한 물자들은 독일군에 빼앗겼고, 덴마크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색출되어 끌려갔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에 의해 종식되자 덴마크의 영토였던 아이슬란드가 독립하게 되었고, 1945년에는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덴마크는 인적·물적 희생이 컸으나, 전후 미국의 대외원조계획인 마샬 플랜Marshall Plan의 혜택으로 파괴된 기간산업시설, 전력부문, 농업분야 등의 복구가 이루어졌다. 전후에 덴마크는 종래의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공동방위를 통한 국가안보 확보 차원에서 스웨덴, 노르웨이와의 방위동맹을 모색하였으나 동 협상이 실패함에 따라 1949년 NATO에 가입하였으며, 그 후 유럽제국과의 경제협력증진을 위해 EFTA(1960), EC(1973)에 각각 가입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유지해 오고 있다.
덴마크는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면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입헌군주국이다. 글뤽스브르그Glüksburg 왕조가 창설된 이후 크리스티안 9세, 크리스티안 10세, 프레데릭 9세에 이어 현재는 마르그레트 2세Margrethe Ⅱ(1972년 즉위) 여왕이 덴마크의 국가 원수로 위상을 점하고 있다. 마르그레트 여왕은 프레데릭 9세의 장녀이다. 그녀는 영국과 네덜란드 여왕 즉위에 영향을 받아 1953년에 개정된 새로운 헌법에 따라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덴마크 왕실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 덴마크는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사회복지정책이 비교적 발달되어 있으며 특히 산업기계분야와 낙농분야 등이 우수한 선진국으로서 북유럽 지역과 유럽 본토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