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보2015. 8. 1. 22:56



러시아 전승戰勝 70주년 기념행사






5월 9일 오전 10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2,000만 명의 영혼을 달래는 종소리가 울렸다. 러시아의 ‘대조국전쟁大祖國戰爭’(the Great Patriotic War) 전승戰勝 70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시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대大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날 ‘승리의 깃발’로 불리는 옛 소련기를 앞세운 차량을 선두로 군인들이 줄을 맞춰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행진했다. 이날 군사 퍼레이드에는 전투기와 장갑차 수백 대와 군인 만 6천여 명이 동원되어 러시아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을 포함해 러시아 우방국 10개 나라의 군인들이 동참했으며, T-14 전차와 신형 대륙 간 탄도미사일 등 그동안 개발한 신무기들도 공개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을 이유로 서방 국가 정상들은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박근혜 대통령도 불참하는 등 러시아가 초청장을 보낸 68개국 정상 가운데 27개국 지도자만 자리를 함께했다. 이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에 이어 행사장에서도 나란히 앉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이 5월 9일이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은 5월 8일이다. 처음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프랑스 랭스 연합군사령부에서 “5월 8일 오후 11시부터 모든 군사행동을 중단한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역할은 소련군이 했고, 나치의 심장부는 베를린이기 때문에 항복 문서는 베를린에 있는 소련군사령부에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를 받아들여 8일 오후 10시 43분 베를린 근교 소련군사령부에서 빌헬름 카이텔 독일군 총사령관이 게오르기 주코프 소련군 총사령관 앞에서 항복문서에 다시 서명했다. 이 시간이 모스크바 시간으로 9일 0시 43분이었다. 



많은 이들이 2차대전을 미국과 독일이 싸운 전쟁으로 알지만 이는 냉전과 할리우드 영화가 만든 오해다. 미·영 연합군의 유럽 전선 전사자는 40만 명 정도였고 러시아군 전사자는 800만 명 이상이었다. 독일은 러시아 전선에 전력의 80~90%를 투입했고, 300여만 명이 전사했다. 미·영과 싸움에서 나온 피해의 4배가 넘는다. 소련군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바다 건너서 구경하는 사이 동유럽 전선에서 고군분투했다. 러시아인들은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지켜낸 레닌그라드 봉쇄전, 독일군의 불패 신화를 깨뜨린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쿠르스크 격전 등이 2차 대전의 승기를 잡는 분수령이었다고 믿는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미영 연합군은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56만 명과 싸웠을 뿐이지만, 소련군은 동부전선에서 홀로 450만 명의 독일군과 싸웠다. 전쟁 막바지 베를린 점령 작전에서만 소련군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소련 인구가 1억 6,000만 명이었는데 2,700만~2,800만 명이 전쟁 중 사망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전승기념일인 5월 9일이 공식적인 2차 세계대전 승전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제패를 꿈꾸던 최강 나치 독일군을 전 국민이 애국심으로 단결해 물리치고 세계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러시아는 아무리 경제 사정이 어려워도 매년 승전 기념일 행사만큼은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국제 역학관계상 주목할 장면은 중국 인민해방군 의장대 112명의 참석이다. 러시아 승전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중국이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관계 강화에 맞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두 나라의 관계가 더 긴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북한을 위에 두고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로서는 썩 밝지 않은 그림이다. 상제님의 상씨름 천지대세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