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불가리아 지역에는 약 2만년 전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트라키아Thracia인(불가리아인의 조상)이 최초로 거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CE 480년경에는 트라키아인에 의해 도시국가가 건설되었고, BCE 46년 로마제국이 트라키아인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대다수 트라키아인들이 모에지아 및 트라키아 지역에서 이탈해 분산되었다. 로마제국의 몰락 후에는 고트족과 훈족의 침략으로 발칸지역이 황폐화되었다.
‘불가리아’라는 나라를 세운 주체는 불가르Bulghar족이다. 불가르족에 대한 언급은 480년 비잔틴의 제노 황제가 고트족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동원하였다는 비잔틴 사서의 기록에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이 불가르족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사람들이었던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유목민이라는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이상의 정확한 기원은 모른다. 그래서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하는데 신용하 교수 같은 경우 불가르족이 부여夫餘족이었다는 주장도 내어놓고 있다. 4세기 후반 부여족의 일파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중앙아시아를 거쳐 카프카즈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불가르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체로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사료상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단지 부여가 ‘부르’라고도 불렸다는 등 몇 가지 명칭이 유사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좌우간 7세기 이전에는 카프카즈 북부로부터 흑해 북안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목과 약탈, 비잔틴 제국의 용병 등으로 활동하며 살았던 불가르족은 7세기에 들어와 동유럽 역사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불가르족의 한 우두머리인 쿠브라트Kubrat라는 인물이 불가리아라는 이름의 나라를 635년경에 세웠던 것이다. 비잔틴 역사가들의 기록에는 쿠브라트가 세운 나라를 ‘대大불가리아Magna Bulgaria’라고 부르고 있다. 그 영토가 매우 넓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불가리아는 오늘날의 불가리아 땅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흑해 북안의 땅에 세워진 나라였다. 대불가리아가 세워질 당시 이 일대는 무주공산이 아니라 또 다른 아시아 유목민인 아바르Avar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바르인들은 그 이전의 훈Hun족처럼 6세기 중반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유럽으로 들어와 흑해 북안에서부터 헝가리 평원 일대에 걸친 대제국을 세웠는데 바로 이 아바르인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불가르인들이 세운 나라가 대불가리아였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비잔틴의 한 연대기 기록에 의하면 쿠브라트는 훈족의 우두머리였다고 한다. 실제로 19세기 중반에 발견된 『불가리아 칸 명부』라는 문서에 의하면 쿠브라트는 훈족의 아틸라Attila 왕의 후손이다. 옛 슬라브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문서에서는 쿠브라트 가문이 아틸라로부터 전해져 왔으며 2대가 아틸라의 막내 아들인 이르니크이고 4대가 바로 쿠브라트라고 한다.
아틸라가 453년 돌연사 한 후 그 지배하에 있던 게르만 족속들이 대거 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거대한 훈 제국이 무너졌는데 아틸라 왕의 세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라틴 사서들과 비잔틴 사서들에 남아 있다. 그 기록들에 의하면 이르니크(혹은 에르나크)는 형들과는 달리 비잔틴 제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세력 보존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다뉴브 강 하구 도브루자 지역에 정착하여 조용히 세력을 확대해갔는데 그 후손이 쿠브라트였던 것이다. 7세기 말에 씌어진 이집트 콥트파 주교 요한의 기록에는 쿠브라트는 어릴 때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져 그곳 황궁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도가 되었는데 이런 연유로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쿠브라트는 비잔틴 사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훈족의 양대 부족인 우티구르 훈족과 쿠트리구르 훈족을 통일하여 그를 기반으로 대불가리아를 세웠다.
그러나 대불가리아는 오래가지 못했다. 쿠브라트의 사후인 670년경 하자르Khazar인들의 공격으로 대불가리아는 멸망하였다. 그 아들들은 불가르족을 이끌고 여러 곳으로 흩어졌는데 장남은 볼가 강과 카마 강 쪽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볼가 불가리아Volga Bulgaria라는 나라를 세웠다. 쿠브라트의 3남 아스파루크Asparukh는 다뉴브 델타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앞에서 말한 그의 선조 이르니크가 정착한 곳이기도 하다. 이 불가르족 집단이 다뉴브 강을 넘어 도브루자 지방으로 진출하자 비잔틴 제국(동로마)의 콘스탄틴Constantine 4세는 이들을 공격하였다. 이 전쟁에서 패한 콘스탄틴 4세 황제는 681년 아스파루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는데 도브루자 지방의 점령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다뉴브 강과 발칸 산맥 사이에 위치한 모에시아 주를 넘겨주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불가리아 땅에 불가르족의 나라가 세워졌다. 이것이 ‘다뉴브 불가리아’ 혹은 ‘불가리아 제1 제국’이다. 발칸 반도의 이 불가르족 국가는 9세기 말에 마자르Magyar족에 의해 세워진 헝가리Hungary와 더불어 대표적인 북방 유목민 국가였다. 불가리아는 정확히 말해서 유목민 출신의 군사엘리트인 불가르족과 일반 백성을 이룬 슬라브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그러나 그 지배층이 훈족의 후예인 기마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성격 역시 오랫동안 북방 유목민 국가의 성격을 띠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의 왕은 아시아 유목민들의 왕 호칭인 ‘한汗(칸Khan)’으로 불렸다.
9세기 초에는 영토가 서쪽과 남쪽으로 확대되어 드디어 유럽의 최강 프랑크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크룸Krum(그리스 사서에서는 ‘크루모스’라고 한다) 칸은 아바르인들, 비잔틴 제국과 싸워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그리하여 당시 불가리아 제국은 오늘날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루마니아의 영토를 포괄하여 남쪽으로는 비잔틴 제국, 서로는 프랑크 제국과 어깨를 겨루는 큰 세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