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공산화와 민주화의 정치 과정
영토상의 불만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섰던 불가리아는 결국 패전국이 되었고, 1919년 승전국과 맺은 뇌이Neuilly 조약으로 영토의 일부를 상실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1930년대 이후 독일과의 밀접해진 경제관계 때문에 독일 편에 서게 되었다. 그 결과 1944년 9월 소련이 불가리아를 침공하였다. 소련군의 침공에 맞춰 불가리아의 좌익 진영인 ‘조국전선’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1946년 총선에서는 공산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권력을 잡았으며, 공산당은 조국전선의 모든 세력들을 축출하고 일당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마침내 1946년 9월에는 왕정이 폐지되고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고 소련헌법을 모방한 헌법이 제정되었다. 농업과 산업이 국유화되고 불가리아는 이제 스탈린주의를 추종하는 소련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동구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소련 군대가 직접 주둔하지는 않았다.
공산당의 지배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종식되었는데, 1989년 11월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있은 후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35년 동안 불가리아를 통치한 토도르 지프코프 공산당 서기장을 퇴진시키는 위로부터의 혁명으로 민주화를 수용했고 당명도 사회당(BSP)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불가리아의 민주화 혁명은 루마니아의 유혈혁명과 구분지어 ‘푸른 혁명’이라고 불린다. 1990년 6월 직접 선거에 의해 의회가 구성되었으며, 1990년 11월에는 국명이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에서 불가리아 공화국으로 변경되었다. 1990년 10월 민주세력동맹에 대한 지지율이 사회당의 지지율을 웃돌고 사회 정치적 불안이 가중됨에 따라 루카노프Lukanov 총리가 퇴진하였으며, 12월 포포프Popov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전후戰後 최초의 연립내각이 출범하였다. 1991년 7월에는 민주주의 신헌법을 채택하고 1991년 10월 신헌법에 의한 총선 및 지방 선거에서 민주세력동맹(UDP)이 승리하여 필리프 디미트로프Philip Dimitrov가 총리에, 공산주의 시절의 반체제 인사였던 젤류 젤레프Zelyu Zhelev가 최초의 민선 대통령에 취임하는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다. 불가리아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서방진영으로 급속히 기울어졌다. 1999년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신청을 하여 2007년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당시 유럽연합은 경제의 민영화를 비롯한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요구하였다.
불가리아 정부와 불가리아 국민들은 유럽연합의 요구에 부응하였다. 군사적으로도 불가리아는 친서방 지향을 분명히 하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서방진영에 가담하였지만 불가리아는 아직도 러시아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85%를 의존하고 핵발전소 연료의 경우 100% 의존하는 형편이다. 공산주의 몰락 후 불가리아의 경제는 레슬러 출신의 사업가들에 의해 대거 장악되었는데 이들은 폭력이나 부패를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러시아는 이들 반불법적 기업가 집단과 밀접히 연계되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논자들은 공산주의 체제 붕괴 후에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불가리아에 영향력을 행사는 것을 일컬어 ‘러시아 신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많은 불가리아 인들은 불가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경제가 급속히 좋아질 것으로 낙관하였으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다. 그 때문에 많은 불가리아 인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 현재 불가리아는 서유럽에 비해서는 경제수준이 아직은 크게 뒤떨어진다. 일인당 명목 GDP는 7,400 달러 정도로 유럽연합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서 불가리아는 현재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서 최빈곤 국가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불가리아는 유럽연합에 가입했지만 통화동맹에는 가입되지 않아 유로화를 쓰지는 않는다. 불가리아 화폐는 ‘레브’(복수는 레바)라고 한다. 현재 1유로에 1.95레바로 고정환율제를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