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보2017. 6. 18. 10:34






아프리 회교국

수단의 역사

 

 




선사시대와 쿠시왕국

수단 지역에는 BCE 8000년경 신석기 문화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일 강 지역을 중심으로 어업과 사냥 등으로 생활하던 이들은 BCE 5000년경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의 인도로 나일 강 계곡에서 농업을 영위하다가, BCE 1070년경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누비아Nubia지방에 쿠시Kush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이집트 이외에 고대 문명의 존재가 확인된 곳이 현재의 수단 지역임을 의미한다. 쿠시왕국은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이집트 신왕국의 분열 이후에 세워졌으며 건국 초기에 나파타Napata에 중심을 두었는데, 쿠시 문명은 철기 제련 기술을 사용하던 세계 최초의 문명 중 하나이다. 고전시대에 쿠시 왕국의 수도는 메로에Meroë였으므로, 쿠시 왕국은 메로에 왕국, 누비아 왕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쿠시인인 카시타Kashta 왕은 기원전 8세기에 이집트를 침공해 정복하였다. 이후 쿠시인들은 아시리아가 그들을 쫓아낼 때까지 쿠시인 파라오가 ‘에티오피아 왕조’라 불렸던 25번째 왕조로서 이집트를 다스렸다. 쿠시 왕국은 기원후 4세기까지 존속하다가 에티오피아 북부에 있던 악숨 왕국에게 정복되어 멸망하였다. 쿠시 제국의 멸망 이후 몇몇 나라들이 이전의 영토에서 세워졌고 그 중에 누비아Nubia도 있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6세기 경, 메로에 왕국의 정치적 문화적 후계자로서 노바티아, 무쿠라, 알라와 등 50개의 국가가 세워졌다. 540년경에는 비잔틴 황후 테오도라가 보낸 선교사가 노바티아에 도착해 기독교를 설파하기 시작했고 이후 16세기 초까지 수단 지역에는 누비아 기독교 왕조 시대가 이어졌다.

 

7세기 중반부터 수단 지역에 아랍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후 1315세기에는 그리스도교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슬람은 긴 시간에 거쳐 이종결혼(intermarriage)과 아랍 상인들, 수피교 수행자와 정착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수단 지역에 스며들었다. 이들 아랍인들은 원주민들과 뒤섞여 수단인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어를 사용하였다. 오늘날의 북수단 문화에서도 자주 누비아와 아랍의 문화 요소가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6세기 경, 푼지Funji라 불리는 부족이 아마라 둔쿠스Amara Dunqus라는 지도자 아래 남 누비아에서 나타나 오래된 크리스천 왕국인 알와의 일부를 탈취해 앗살타나 앗자르카(푸른 술탄국) 혹은 센나르 술탄국(Sultanate of Sennar)이라 불리는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푸른 술탄국은 결국 푼지Funji 술탄국의 뼈대가 된다. 이 왕국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지다가 후계 분쟁과 왕족의 쿠테타가 계속되며 쇠락해졌다.

 


오스만 통치기와 마흐디 수단

1821년, 이집트를 정복한 오스만 터키계의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총독이 수단을 침공하여 마지막 푼지 술탄 바디 7세의 항복을 받아 냄으로써 수단은 이집트의 1개 주로 전락하여 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집트 총독 정부의 통치하에서 실행된 부패와 농부들에게 과해진 모진 세금 징수 등의 폐단이 쌓이면서 반정부 저항 활동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1881년 6월 개혁주의적 인물인 알-삼마니야al-Sammaniyya 종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아마드 압둘라Muhammad Ahmad Abdulla가 스스로를 마흐디Mahdi(회교에서 구세주)라 선언하고 수단 혁명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는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서구 지배로부터 벗어나 수단의 진정한 독립과 자유, 이슬람으로의 회기를 주장하며 투쟁 세력을 규합해 종교적 폭동을 일으켰다.

 

그가 이끄는 마흐디군은 마침내 1885년 1월 카르툼을 함락시켜 수단의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수단의 터키-이집트 정부에 승리를 거두었다. 카르툼 정복 후 몇 달이 지나 무함마드 아마드가 병으로 사망하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Abdullah Ibn Muhammad가 뒤를 이어 마흐디 운동을 이끌었다. 마흐디 운동을 통해 수단은 처음으로 여러 부족들에 의한 분열된 통치 구조에서 통합된 근대국가로 넘어갈 수 있는 중앙집권 형태의 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1899년 9월 2일 마흐디 군대는 카라리Karari 전투에서 영국 식민주의 토벌대의 키체너Kitchener 장군에게 패했으며, 곧이어 마흐디 국가의 수도로 정했던 움두르만Umm Durmān 함락되고, 지도자인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도 사망함으로써 마흐디 운동은 막을 내렸다.

 


영국-이집트 수단

1899년 수단을 정벌한 영국은 영-이집트 간에 수단 공동통치협정을 맺어 수단 지역을 ‘앵글로이집트수단’이라고 불렀다. 영국과 이집트는 이집트에서 임명한 총독을 영국이 승인하는 식으로 선출한 총독이 수단을 운영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수단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효율적으로 통치되었다. 1924년에 영국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수단인과 수단에 대한 이집트 지배권을 주장하는 이집트 민족주의자의 반발로 수단 총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은 저항 운동이 극심한 북부 수단에 대해서는 Native Administration제를 도입하고, 남부 수단에 대해서는 Southern Policy를 채택하여 영어, 토착어 장려 및 기독교 포교를 강화함으로써 남북 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반 관계를 단절시켜 상호 괴리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독립 이후

하지만 계속된 영국의 수단 통치로 인해 이집트에선 갈수록 민족주의자들의 거친 반발이 일어났고 저항운동이 날로 격심하여짐에 따라 이집트와 영국은 북수단과 남수단의 주민들이 영국의 철수를 원하는지 자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953년 2월 영-이집트 협정에서 수단의 자치 독립을 위한 3년간의 준비기간이 합의되었고, 마침내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11년 만인 1956년 1월,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 승인 하에 수단공화국으로 독립을 성취하였으며, 뒤이어 AL(Arab League: 아랍연맹)과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의 가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영국 식민 정책의 결과로 남부와 북부 간의 지역 대립 및 다수 정당의 난립으로 국정의 혼란이 계속되었고, 1958년 11월에는 이브라힘 아부드Ibrahim Abboud 장군이 무혈 쿠테타로 군사 정권을 수립하고 정통 이슬람 국가를 선언하였다. 1964년에는 하르툼 대학생들을 선두로 한 군정반대운동인 10월 시민혁명이 일어나 아부드 정권을 무너뜨렸고, 민간 정치인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되어 의회정치 체제가 되었다. 하지만 당쟁과 남부 문제 등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회복치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1969년 5월 가파르 니메이리Gaafar Nimeiri 대령이 이끄는 두 번째 쿠데타가 일어나 다시 군정으로 복귀했다. 니메이리의 새 정부는 수단사회주의를 선언하고 국호를 수단민주공화국으로 개칭하였으며, 구정치인 및 반대파에 대한 대 숙청을 단행했다. 외국인 자산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경제 원조 및 군사 원조의 대공산권 의존도를 급속히 높였다. 1972년에는 좌익 장교단 쿠테타 음모를 분쇄하면서 공산주의 세력을 타도하고 총선에서 니메이리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수단 사회주의 연맹(SSU)을 창립하고 단일 정당제를 채택했다.

 

1985년 3선의 니메이리 대통령이 외유 중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다하브Abdel Rahman Swar al-Dahab 장관은 1986년 민정 이양과 동시에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어 1989년에는 오마르 알 바쉬르Omar al-Bashir가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바쉬르는 이후 연이은 집권 연장에 성공하여 2017년 3월 현재까지 28년째 장기집권 중이다.

 

수단은 1983년부터 내전內戰을 시작했다. 주로 남부 아프리카계 함족인 기독교도와 토속 정령신앙을 믿는 주민들로 이루어진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아랍계 셈족으로 이루어진 북부 중앙 정부의 지나친 이슬람 원리주의와 차별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인데, 남부 반군측은 남부 지역의 자치권과 자원 이용 확대를 요구하면서 반정부 분리 무장 투쟁을 개시했다. 그간 이 내전의 과정에서 200만 명 이상이 죽고, 400만 명 이상이 강제 추방, 구타, 강간 혹은 고문의 고통을 체험하거나 노예로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1월 남부 반군과 북부 정부군 간의 포괄적 평화협정으로 내전은 종료되고 평화협정에 따라 수단 정부는 남부에 반자치권을 부여하였으며, 그 후 2011년 7월 9일 남부는 독립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률로 남수단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부와 북부의 인종, 종교적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결됐으나, 아직도 수단 내에서는 정치의 혼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