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덴마크의
중세시대역사
에스트리스Estrith 왕조(1047~1447년)
크누트 대왕이 죽자 3국은 분열되었고, 덴마크는 스칸디나비아의 조그만 세력으로 전락하였다. 크누트 왕의 조카 스벤(스웨인) 2세Svend(Sweyn) Ⅱ(1020?~1074)는 덴마크를 노르웨이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고, 1047년에 잉글랜드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로마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신 덴마크 왕국 건설을 지향하면서 최초의 왕조인 에스트리스Estrith 왕조를 창설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후 몇 번의 왕이 교체되면서 다시 왕권이 약화되었고, 덴마크 교회는 함부르크의 세력 하에 있다가 1104년에 독자적인 국교회를 갖게 된다.
이후 교회와 국가 내의 분열이 거듭되자 1157년에 크누드 리바르의 둘째아들 발데마르Valdemar den Store 1세(1131~1182)가 일어나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왕은 신성로마 황제에 복종할 것을 맹서하고, 군사력을 증진하고 재편성하여 독일을 견제하면서 발트 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다. 그때 셸란 섬에 구축한 성채가 바로 오늘의 코펜하겐Copenhagen의 기원이 되었다. 그가 사망한 후 발데마르 2세(1170~1240)가 즉위하면서 덴마크는 경제적 측면에서 안정이 되었으나 왕과 교회, 귀족 사이의 투쟁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왕국의 힘이 점점 사그라졌다. 12세기 중반부터 전국적으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교회가 확대됨에 따라 국왕, 귀족 및 교회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1282년 국왕에 대한 견제 기능을 보유한 국정 협의 기관으로서 귀족원(다네호프Danehof, 후에 Rigsråd로 개칭)이 설치되기도 했다.
발데마르 4세가 죽자 외손자인 올라프 2세Olaf Ⅱ세(1376~1387 재위)가 1380년 노르웨이 및 아이슬란드를 합병(1814년까지 지속)했고, 이어 발데마르 4세의 둘째 딸 마르그레테Margrete 1세(1387~1397 재위)가 등장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섭정하다가 1387년에 덴마크 및 노르웨이의 군주로 승인받았고, 1389년에 스웨덴 왕을 겸함으로써 3국을 다스렸다. 그럼으로써 1397년 비로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 연합체인 칼마르 동맹Kalmar Union(1397~1523)이 결성되었으며, 마르그레테 1세는 정식으로 3국의 북해 제국을 다스리는 여왕이 되었다.
올덴부르크Oldenburg 왕조(1448~1863년)
1448년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1세Christian Ⅰ(1448~1481년 재위)에 의해 창설된 제2의 올덴부르크Oldenburg 왕조(1448~1863년)로 교체되지만 3국 연합국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스웨덴에 독립의 기운이 일어나 연합체의 결성이 약화되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Christian Ⅱ는 스웨덴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의 독립군을 격파하고 스톡홀름에 입성하여 독립조직을 와해시켰지만, 끝내 스웨덴은 봉기를 거듭하여 1523년 덴마크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칼마르 동맹이 해체되었다.
1526년 즉위한 크리스티안 3세Christian Ⅲ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루터교를 받아들였고, 자치 능력을 상실한 노르웨이를 속국으로 만들었으며, 원로원과 귀족세력의 강화를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켰고, 여러 분야의 학자를 배출하여 나라가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프레데릭 2세Frederik II가 집권하면서 덴마크는 발트 해의 주도권을 놓고 스웨덴과 폴란드, 뤼벡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었고, 후에 노르웨이 왕이면서 덴마크의 왕인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Ⅳ가 등장하여 상공업을 진흥시키고,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1625년 독일과의 전쟁, 1643년 스웨덴과 네덜란드와의 두 번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의 손실과 국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1660년에 덴마크의 프레데릭 3세Frederik Ⅲ가 나와 귀족세력과 대립하는 도시 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 받고 1665년에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를 확립했다.
1788년에 덴마크에서 농노제가 폐지되었다. 덴마크는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을 제정하고, 경제적인 활력에 주력을 가했다. 그러나 유럽의 동맹연합에 대립하여 벌인 나폴레옹 전쟁The Napoleonic Wars(1803~1815)에서 프랑스 편에 서게 된 덴마크는 영국, 러시아, 스웨덴의 동맹국과 싸웠으나 패하게 됐다. 결국 덴마크는 1814년 킬Kiel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와의 연합을 파기하고,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여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 덴마크와 덴마크령 아이슬란드, 패로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정은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1830년 프랑스 혁명 직후 왕권이 크게 약화되면서 1842년에는 덴마크에 입헌적 대의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에 절대왕정 폐지 및 의회(Rigsdag : 상원 Landsting 및 하원 Folketing으로 구성) 신설을 골자로 하는 최초의 『헌법』이 채택되었고, 마침내 프레데릭 7세Frederik Ⅶ는 왕정을 포기하고 자유주의 헌법을 받아들여 입헌군주제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귀족대표 중심의 상원과 소규모 자본가와 평민대표 중심의 하원간의 주도권 경쟁으로 덴마크의 국내 정국은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