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밀복검
口蜜腹劍
금주의 한자 ‘口蜜腹劍구밀복검’에서
‘口구’는 ‘입’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입에서 나는 나쁜 냄새’ 즉 ‘입구린내’는 ‘냄새 취臭’ 자와 결합된 ‘口臭구취’라고 표현하고, ‘말솜씨’는 ‘말 잘할 변辯’ 자와 결합된 ‘口辯구변’ 또는 ‘말씀 언言’ 자를 쓰는 ‘言辯언변’이라는 말을 쓴다.
‘蜜밀’은 ‘꿀’을 말한다. ‘벌 봉蜂’자와 결합된 ‘蜜蜂밀봉’은 ‘꿀벌’을 말하고, 글자의 순서가 바뀐 ‘蜂蜜봉밀’은 ‘벌꿀’을 말하는데, 이렇게 한문은 글자의 배열 순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해야 하겠다.
‘腹복’은 ‘배’를 말한다. ‘抱腹絶倒포복절도’란 말이 있다. ‘안을 포抱’ 자를 쓰는 ‘포복’은 ‘배를 안다’는 뜻이고, ‘끊을 절絶’, ‘넘어질 도倒’의 ‘절도’는 ‘기절해서 넘어지다’는 뜻으로, 배를 끌어안고 넘어질 정도로 몹시 웃는 것을 말한다.
‘劍검’은 ‘칼’을 말한다. ‘칼’에는 ‘검’과 ‘도刀’가 있는데. ‘검’은 날이 양쪽에 있는 칼이고, ‘도’는 날이 한쪽에만 있는 칼이다. 그래서 ‘과일 깎는 칼’을 ‘果刀과도’라 하고 ‘과검’이라 하지 않으며, 부엌에서 쓰는 칼 즉 ‘식칼’을 ‘食刀식도’라 하고 ‘식검’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구밀복검’은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는 뜻으로, 입으로 꿀처럼 달콤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남을 몰래 해치는 음모를 품고 있음을 비유해 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펴낸 《자치통감資治通鑑》이란 책의 〈당기唐紀〉편 현종천보원년玄宗天寶元年 조에 실려 있다.
唐紀당기는 당 왕조의 기록이란 뜻이다.
玄宗현종(재위 712-756)은 당 나라의 황제로 이름은 이륭기李隆基(685-762)이다. 처음에는 유능한 재상을 임용하고 잘못된 정치를 고쳐서 역사상 유명한 ‘개원지치開元之治’ 즉 개원 연간의 치세治世를 이뤘으나 나중에는 이림보 같은 소인小人을 신임해 그야말로 경국지색傾國之色 즉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미인인 양귀비楊貴妃(719-756)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안록산安祿山(703-757)과 사사명史思明(703-761)이 일으킨 반란, 소위 안사安史의 난亂을 초래해서 당 왕조를 쇠퇴하게 만든다.
천보는 당 현종玄宗의 연호로서 742년에서 756년까지 15년간이다. 연호는 황제의 해를 기록하는 이름으로 한 나라 무제 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1년은 ‘으뜸 원元’자를 써서 ‘원년元年’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천보 원년은 천보 1년으로 서기 742년을 말한다.
‘도울 자資’, ‘다스리 치治’, ‘통할 통通’, ‘거울 감鑑’ 자로 구성된 책명 ‘자치통감’이란 말은 당시 황제인 신종神宗 조욱趙頊(1048-1085)이 이 책을 가리켜 ‘지난 일을 거울삼고 있어서 치도治道 즉 정치 방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데서 나왔다. ‘통감’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는데, 사마광이 19년 동안 정력을 기울여서 완성한 2백94권의 장편 역사 대작이다. 이 책은 각 왕조王朝의 ‘기전체紀傳體’ 단대사斷代史를 종합하고 편년체編年體 방식으로, 주周 나라 제32대 왕인 위열왕威烈王 희오姬午(?-서기전 402)이 진晉나라 3경卿(즉 한韓씨, 위魏씨, 조趙씨)을 제후諸侯로 인정한 기원전 403년부터 오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시영柴榮(921-959) 때인 959년에 이르기까지 장장 1천3백62년간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연대와 역사적 사실을 결합해서 시대 순으로 서술한 이 책은 역사의 발전이 매우 명백하게 서술돼 있을 뿐 아니라 중대한 사건의 전후 인과因果 및 각 방면의 관련 사건에 대해서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후에 이 책이 너무 방대尨大하여 열람閱覽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종의 다이제스트라고 할 수 있는 북송 때 강지江贄의 『통감절요通鑑節要』와 남송 때 주희朱熹(1130-1200)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원추袁樞(1131-1205)의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이란 책들이 나와서 널리 읽혔다. 조선시대부터 『통감』이라고 하면 강지의 책 『통감절요』를 말하는데, 강지의 호가 소미少微이기 때문에 이를 『소미통감절요』라고도 부른다.
이야기는 당 나라 천보 5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림보李林甫(683-753)는 중국 당 나라 현종 이륭기 때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중서령中書令’이었는데, 이는 재상宰相의 직위였다. 이 사람은 재주가 뛰어나고 학식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 글도 잘 짓고 그림도 잘 그렸다. 그러나 인품을 논한다면 철저하게 악질惡質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여 재능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명성이 자기보다 높은 모든 사람들을 해쳤다. 권세와 지위가 자기와 대등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척하고 공격했다. 그는 당시 황제인 현종 이륭기에게 온통 아첨阿諂을 통해 신임을 얻는 재주를 가지기도 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륭기에게 다가갔으며 아울러 이 수법으로 현종이 총애하고 신임하는 비빈妃嬪들과 심복心腹 태감太監 즉 내시內侍들의 비위를 맞춰 그들의 환심과 지지를 얻었으며 이로써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했다.
이림보는 사람들과 접촉할 때 겉으로는 더할 수 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며 온통 감동적인 선의의 말들을 했지만, 실제로 그의 성격은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여 언제나 은밀히 남을 해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면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성실하고 간절한 모습으로 가장하여 동료 대신 이적지李適之(694-747)에게 말했다.
“화산華山에 엄청난 양의 황금黃金이 매장埋藏되어 있는데 만일 개발해서 채굴採掘해낼 수 있다면 나라의 재정財政을 대대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오. 안타깝게도 황상께서는 아직 모르고 계시다오.”
이적지는 이것이 정말인 줄 알고 황급히 달려가 현종 이륭기를 알현謁見해서 한시라도 빨리 화산의 금광을 채굴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륭기는 이적지의 말을 듣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즉시 이림보를 찾아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런데 이림보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일은 제가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화산은 제왕의 풍수風水가 집중돼 있는 곳인데 어떻게 함부로 채굴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황상皇上께 채굴하라고 아뢰었다면 아마도 좋은 뜻을 품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제가 여러 차례 이 일을 황상께 아뢸 생각을 하였으나 단지 일을 열 수 없었을 뿐이옵니다.”
현종 이륭기는 이림보의 말에 감동을 받고 그가 진정으로 임금에게 충성忠誠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신하로 생각했으며, 반대로 이적지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을 갖고 점차 그를 멀리하게 됐다.
바로 이런 식으로 이림보는 이 특수한 ‘재능’으로 줄곧 19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후에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펴낼 때 이림보를 평가하여 그가 입에는 꿀을 달고 있지만 뱃속에는 칼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실제에 아주 부합한 말이다.
이 성어는 원래 좀 더 구체적으로 ‘있을 유有’ 자를 넣어서 ‘口有蜜腹有劍구유밀복유검’이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우리 속담의 ‘웃음 속에 칼이 있다’와 같은 의미인데, 이 속담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여럿 있습니다. ‘웃을 소笑’, ‘가운데 중中’, ‘있을 유有’, ‘칼 검劍’ 자로 구성된 ‘笑中有劍소중유검’, ‘검’ 자 대신에 ‘칼 도刀’ 자를 쓰는 ‘笑中有刀소중유도’, ‘笑中刀소중도’가 있고, ‘속 리裏’, ‘감출 장藏’ 자를 쓰는 ‘笑裏藏刀소리장도’도 많이 쓰인다.
또 ‘범 호虎’ 자를 쓰는 ‘笑面虎소면호’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호랑이의 성격이 흉악하고 사나워서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생겨났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흉악한 사람을 비유하는데 쓰인다.
【단어】
口구: 입. 口(입구)부, 총3획, kǒu
蜜밀: 꿀. 虫(벌레충)부, 총14획, mì
腹복: 배. 月(육달월)부, 총13획, fù
劍검: 칼. 刂(선칼도방)부, 총15획, jiàn
【출전】
李林甫爲相, 凡才望功業出己右及為上所厚、勢位將逼己者, 必百計去之; 尤忌文學之士, 或陽與之善, 啖以甘言而陰陷之. 世謂李林甫“口有蜜, 腹有劍.”……
李適之性疏率, 李林甫嘗謂適之曰: “華山有金礦, 採之可以富國, 主上未之知也.” 他日, 適之因奏事言之. 上以問林甫, 對曰: “臣久知之, 但華山陛下本命, 王氣所在, 鑿之非宜, 故不敢言.” 上以林甫爲愛己, 薄適之慮事不熟, 謂曰: “自今奏事, 宜先與林甫議之, 無得輕脫.” 適之由是束手矣. 適之旣失恩, 韋堅失權, 益相親密, 林甫愈惡之.
-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당기唐紀」 현종천보원년玄宗天寶元年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