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시원민족과
국가의 형성
이스라엘Israel 지역은 고대에 가나안Canaan이라 불리우는 땅이었다. 이 땅에 살았던 원주민인 가나안족은 BCE(기원전) 7000년 경부터 농경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지역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위치하여 두 문명이 자주 충돌했던 관계로 셈족, 히타이트족 등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았다. BCE 17세기에 족장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족(헤브라이족, Hebrew)이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이스라엘의 시원 역사가 출발하게 되는데, 히브리족은 엄청난 기근 때문에 이집트의 나일 강 하류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집트에서의 탄압과 노예 생활에 견딜 수 없었던 히브리족은 BCE 13세기 경 다시 모세Moses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출애굽 사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후 BCE 1020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Saul은 이집트의 지배가 쇠약하여진 틈을 이용, 가나안 땅의 선주민 펠리시테인(필리시티아인)과 싸워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이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다윗David 왕과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설한 솔로몬Solomon 왕이 뒤를 이으면서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로마의 지배와 유대인의 추방
솔로몬왕이 죽은 뒤 왕위 다툼으로 인하여 BCE 930년 왕국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정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대(유데아)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BCE 722년에 앗시리아 왕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유대 왕국도 BCE 586년 신新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수도 예루살렘을 점령당하고 멸망하면서 유대인(유태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바빌론 유수 사건이 발생하였다.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Cyrus II 때 유대인들은 풀려나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성립시켰으나, BCE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해 그리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속주屬州로 다스리기 시작한 것은 BCE 1세기 후반부터였다. 당시 동방으로 세력을 뻗치던 로마가 유대 왕국의 내란에 개입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대 왕국은 로마 제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유대 지방이 로마의 정식 속주가 되어 로마 총독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은 CE 6년이었다. 로마는 유대인들의 종교와 전통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유대인들은 66년에 로마의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와 유대인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수년 동안 벌어지다 결국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으나 일부 극렬파 유대인들은 사해 인근의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까지 저항을 하였다. 이들의 저항은 73년 집단자결로 끝이 났다. 이 전쟁 때 이스라엘 왕국의 도성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야훼 신에게 제사를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 이 성전이 사라져 하나님에게 예배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이후 유대교는 회당(시나고그) 중심의 종교가 되었다. 131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피톨리나’로 개명하고 옛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터에 로마의 주신 유피테르를 제사하는 신전을 세웠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유대 속주의 이름도‘팔레스티나’로 바꿔버렸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이러한 조처에 대해 시몬바르 코크바를 지도자로 하여 맹렬히 저항하였으나 반란은 진압되었다(CE 135년).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