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주의와 유물론의
철학자 포이에르바흐
19세기 중반은 헤겔 좌파의 유물론이 출범하는 시기였다. 헤겔 좌파의 사상적인 혁명은 슈트라우스D.F Strauß가 1835년에 『예수의 생애(Leben Jesu)』를 출판하면서 비롯된다. 이 책에서 그는 초자연적인 것, 즉 영혼이나 초월적인 신 등이 모두 사라지고,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들과 그 변화의 법칙들만이 남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해서 신의 계시가 해석되고 인간이 종교적인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자연종교가 말해 주듯이, 19세기에는 유물론이 득세하게 되는데, 여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일등공신은 바로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1804~1872)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포이에르바흐의 사고는 어떠했을까? 그는 1839년에 “절대자”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헤겔철학에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당시 헤겔의 철학은 독일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었는데, 중심이념은 절대정신이었다. 역사와 사회의 발전과정이란 절대정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국가란 절대정신의 대변이자 실현도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즉 절대정신이라는 관념이 현실적인 모든 것을 전적으로 규정한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에 대해 극적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가 등장한다. 바로 헤겔을 극단적인 관념론자라고 비판한 포이에르바흐이다. 그는 헤겔이 말하는 절대자란 자신의 철학적 사고 안에서 말라 죽어 버린 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빈껍데기의 신학적 성령聖靈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절대관념론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나선 포이에르바흐는 헤겔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길로 향하게 된다. 포이에르바흐는 모든 존재란 원초적으로 개념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알려지는 물질이고, 물질적인 토대에서 철학적 사유가 비롯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전개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신체를 통해서 들어오는 감각의 권리를 부활시키게 될 수밖에 없었고, 로마시대에 스토아학파 창궐 이후 오랫동안 경멸을 당해 왔던 유물론을 철학적 사유의 최고봉으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정신(영혼)과 물질(신체)의 관계에 대해서도 포이에르바흐는 ‘신체가 영혼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헤겔의 근본철학에 대립한다. 헤겔의 관념론에서 보면, 현실적인 인간의 모든 것은 영혼과 정신으로부터 나온 관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육체적인 것을 형성하고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헤겔은 인간의 정신적인 사고가 인간 삶의 전반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포이에르바흐는 “인간이란 그저 먹는 바의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의 핵심내용은, 정신이 육체를 의식적으로 규정하지만, 정신 자체가 이미 육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포이에르바흐는 또한 헤겔의 관념론을 “위장된 신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즉 절대이념의 외적 전개[외화外化]로 인해 현실적인 존재가 형성된다고 하는 헤겔의 주장이란 단지 절대자인 ‘신에 의해 자연적인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고 하는 전통적인 신학적 학설을 합리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해서 포이에르바흐는 헤겔이 말한 “무한자(das Unendliche)” 또한 현실적으로 유한한 것, 감각적인 것, 정해진 것이 추상화되고 신비화되어서 그리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의 종교적인 관념의 세계조차 포이에르바흐에 의해 감각적인 요인들로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실재하는 현실적인 것이란 신도 아니고, 추상적인 존재도 아니고, 관념도 아니며, 오직 감각에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포이에르바흐는 감각주의와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전통적인 유신론(theism)을 버리고, 무신론(Atheism)을 바탕으로 인간주의를 내세우게 된다. 그는 최고의 존재를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이요, 인간에게는 곧 “인간이 신이다(homo homini deus)”라는 얘기다. 만일 신이 인간의 주主라면 인간은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신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주’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이러한 주장은 포이에르바흐가 인간의 존재를 신의 지위에까지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기초 또한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이 국가를 만들고 역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포이에르바흐의 감각주의와 유물론은 19세기의 새로운 질서가 개벽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칼 마르크스Karl Heinlich Marx(1818~1883)는 유물론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세계의 정치와 문명사가 결정적으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