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2017. 9. 4. 06:00




찰스다윈의 진화론과 

자연과학적인 유물론




17세기 영국의 경험주의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이로 인해 19세기에 이르러 유물론적인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다. 1854년에 괴팅겐에서 열린 자연과학자회의는 19세기 유물론의 시대정신을 확증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유럽인들의 사고는 감각적인 데이터(datum)라고 하는 부분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가치의 증대와 인간성의 내적인 빈곤은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유물론에 입각해서 사고한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고, 유물론이 탄생하게 되는 간접적인 동력원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헤겔 좌파의 유물론은 이러한 사회적 풍조의 영향으로부터 출범하게 된 것이다.

 

유물론적인 사고를 대변하는 자연과학적 저서로는 1845년에 나온 카알 포크트Karl Vogt의 『생리학적인 편지들(Physiologische Briefe)』, 1852년에 출간된 야콥 몰레쇼트Jakob Moleschott의 『생명의 순환(Kreislauf des Lebens)』, 1855년에 나온 루우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 『힘과 물질(Kraft und Stoff)』, 1855년에 나온 하인리히 쏠베Heinlich Czolbe의 『감각론 신설(Neue Darstellung des Sensualismus)』 등이 유명하다.

 

당시의 자연과학적 저술은 고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볼 수 있는 유물론적 사고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다. 세계는 생성의 과정에 있으며, 물질과 운동의 힘만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적인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면, 운동변화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제시된 아낙사고라스의 “정신(Nous)”,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Idea”나 이를 본떠서 세계를 창조한 “데미오우르고스Demiourgos 신神”,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의 운동인으로 제시한 “부동의 원동자”, 그리스와 로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던 모든 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학문을 탐구하는 인간의 의식이나 영혼은 물질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뇌腦의 작용으로부터 파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과학적 유물론은 정신에서 나오는 사상과 물질적인 뇌의 관계를 육체에서 흐르는 땀[汗], 간에 붙어 있는 쓸개, 콩팥에서 생성되어 나오는 오줌에 비유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사유하는 정신은 신체적인 감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뇌 활동의 부수적인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물학의 진보는 유물론적 사고를 더욱더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1858년에 차알스 다윈Charles Darwin(1809~1882)은 『자연도태에 바탕을 둔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을 간행하여 모든 종은 하나의 유일한 원세포로부터 발전해 나왔다는 진화론을 도입했다. 1871년에 그는 『인간의 기원과 종에 관한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을 출판하여 인간도 진화해 왔음을 주장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 맞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19세기 말의 시대정신은 유물론적인 “일원론(Monismus)”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즉 1906년에 발족된 “일원론자협회(Monistbud)”는 ‘많음이 근원의 하나(das Eine)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부르짖었다. 근원의 ‘하나’를 에른스트 핵켈Ernst Haeckel(1834~1919)은 “실체(Substanz)”라고 했고,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wald(1853~1932)는 “에네르기(Energie)”라 했다. 특히 핵켈은 원자가 기계론적으로 진화하여 오늘날의 인간에 이르렀다고 함으로써 다윈보다 더 급진적인 진화론을 주장했다. 그는 1868년에 펴낸 『자연적인 창조의 역사(Natürliche Schöpfungsgeschichte)』에서 생명의 변종은 저절로 생긴다는 , 원생동물이 계속적으로 분화함으로써 고등생물이 생겨났다는 것,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은 유인원類人猿이라는 것 등을 주장했다.

 

유물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연과학적 유물론은 범신론汎神論(Pantheismus)으로 흐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즉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각자 유지되어 왔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 즉 초월적인 신과 현실세계라는 이원성은 하나로 융합되어 기계론적 일원론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일원론은 오직 하나의 실체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일원론에서는 물체와 정신, 신과 세계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만이 실재할 뿐이라는 얘기다. 그 하나는 바로 신이요 곧 세계이다. 그런데 만일 초월적인 신과 자연세계가 분리된다면, 인격적 유신론이 설 자리가 있겠지만, 일원론의 입장에서는 무신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근대에 발생한 범신론의 부활은 이런 입장을 그 배경으로 깔고 있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