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2017. 8. 27. 05:30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는 누구인가? 그는 1844년 프러시아Prussia의 뤼쎈에서 태어났다. 그는 슈울포르타를 졸업한 후 라이프찌히에서 고전학을 공부했다. 이때에 그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고, 22살쯤부터 바그너R. Wagner와 친하게 지냈으며, 24세에 바아젤Basel 대학의 고전어학 교수가 되었다. 1870~1871년에는 지원병으로 전쟁에 참가하여 위생병으로 몇 달을 지냈는데, 이 때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려 호되게 앓게 되자 휴가를 얻어 제대했다. 그는 휴양하러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결국 1889년에 진행성마비증에 걸려 정신착란에 빠지고 말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를 극진히 간호했지만 그는 결국 1900년 8월에 별세하게 됐다.

 

니체의 초기 사상은 새로운 교양(Bildungsideal)을 형성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의 이상은 아름답고 영웅적인 인간상에 있었고, 그 원형을 고대 소크라테스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즉 헤라클레이토스, 테오그니스, 아이스킬로스 등의 비극적인 시대성에서 찾았다. 특히 그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의 예술과 비극을 새로이 해석하려고 애썼다. 그러한 비극은 두 요소, 즉 현실적인 삶의 근원적인 의지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Dionysos”적인 요인과 삶의 근원적인 의지를 찢어 버리는 표상을 상징하는 “아폴론Apollon”적인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디오니소스적인 삶에 푹 빠져 있었고, 진정한 삶의 가치 자리에다 디오니소스를 올려놓았다.

 

그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내놓음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세계를 제시하게 된다. “힘에의 의지”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암시하는 신호탄이다. 이는 1883년 이후에 나온 『짜라투스트라는 또한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초인(Übermensch)”을 등장시켜 극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자이고, 초인은 가치들을 창조하는 자이고, 디오니소스는 가치들을 상징하는 자이다. 이 가치에 대립하는 것은 모두 십자가에 매달린 죽은 자로 상징된다.

 




니체의 고민은 진정한 철학자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정 인간이 나아갈 길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세계를 열어주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는 먼저 “신은 죽었다(Gott ist tot)”고 외치면서 기존의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망치를 든 철학자로 변신한다. 그는 기존의 모든 도덕적 규범들을 파괴하고, 인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가치 창조로 나아가는 삶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이나 그리스도교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그가 부수고자 하는 확립된 기존의 도덕적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인간은 이러저러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도덕적 규범이었다. 니체는 이러한 도덕적 규범이 생명의 고귀함과 삶의 풍부한 가치를 마비시켜 왔다고 보았다. 또한 니체는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을 발명하여 삶의 본능, 삶의 기쁨과 풍부함을 억압하였고, 천국이라는 저세상[피안彼岸]을 발명해내어 이 세상[차안此岸]의 가치를 말살하였으며, 구원받는 영혼을 발명해 내어 신체적인 모든 것을 비방하였고, 죄와 양심을 발명해 내어 삶의 창조의지를 빼앗아 버렸다고 말한다.

 

삶은 일회적이요 살과 피로 형성된 하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기존의 도덕은 새로운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도덕은 허구요, 참되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다. 니체는 도덕현상이란 없다고 한다. 즉 열등한 사람들이 삶과 삶의 현상을 잘못 해석한 것이 도덕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얘기다. 니체에 의하면 본래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적나라한 생존 자체요, 순수한 자연적인 모든 생성이다. 또한 사랑, 동정, 겸손, 자신을 낮춤, 희생정신을 강요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노예의 도덕이요, 삶에 적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십자가에 매달린 자는 삶에 대한 저주’라고까지 말한다.

 

기존의 도덕적 규범이나 이념이 모두 부서졌으니, 이제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은 죽었다’. 모든 것은 허용된다. 초인은 신의 죽음을 확신하는 자이다. 사실 이 초인 안에 니체의 의욕 전체가 응집해 있다. 초인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인은 유일한 것이며, 인간도 아니고 괴로워하는 자도 아니고, 가장 착한 자도 아니다. 초인은 이상理想으로서 나타나는 일체의 피안의 세계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대지大地를 위하여, 생生 자체를 위하여 스스로를 바치면서 이에 기꺼이 순응하는 자이다.

 

니체는 그리스도의 자리에다 “디오니소스”를 올려놓는다. 초인은 세계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영원히 새로 솟아오르는 ‘디오니소스’적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인식과 창조의 가치 확립을 가져오지만 스스로 파탄에 직면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초인은 모든 가치란 삶을 위해서이고, 진정한 삶이란 “힘에의 의지”라고 말한다. 초인은 자신이 이 세계의 한 부분인 동시에 “힘에의 의지”를 뜻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초인은 생生 자체의 가장 요원하고 가장 해결하기 힘든 모순을 견디어 낼 줄도 알고 있었다.

 

끝으로 초인은 “영겁회기永劫回歸(die ewige Wiederkunft)”의 사상도 체득할 수 있는 인간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게 마련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한 윤회輪迴를 거듭한다.”(『짜라투스트라는 또한 말하였다』 제3부). 다시 말해서 세계란 일정한 크기를 지닌 힘의 덩어리며, 여기에는 무수하게 많은 존재자가 있다. 이것들은 모두 무한히 지속하는가? 아니다. 무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뿐이다. 세계의 모든 것들은 무한한 시간 계열에서 수없이 생겨나고 없어진다. 만물은 반복적으로 영원히 회귀하는데, 이것이 바로 생이라는 것이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