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신을 세운
실용주의實用主義사상
실용주의 또한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진리관을 거부하고 현상으로 드러난 경험적인 세계에만 관심을 둔다. 왜냐하면 실용주의 진리관은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를 통해 ‘유용성이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행동과 실천을 중요시함을 뜻한다. 그래서 실용주의는 ‘삶의 행동이 인식을 결정짓는 것이지 인식이 삶의 행동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바탕에 깔고서 삶의 유용성을 추구하는 철학으로 나아간다.
실용주의적 사고를 처음으로 창시한 자는 차알스 퍼어스Charles Peirce(1839~1914)이고, 이를 발전시킨 자는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1842~1910)라 볼 수 있다. 나아가 실용주의를 계승하여 새로운 철학, 일명 도구주의(Instrumentalism)로 전개해 나간 자는 존 듀이John Dewey(1859~1952)이다.
퍼어스는 사물을 지각하는 관념을 명료화하기 위해서 그리스어 “실천(pragma)”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여기로부터 실용주의란 말이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지성 속에 개념으로만 있는 관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관념이 실천으로 규정되어 현실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실현된 관념만이 의미가 분명해지고 알려질 수 있다. 이는 관념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실천의 차이를 관찰하면 된다는 뜻이다.
퍼어스의 실용주의적 특성은 1877년에 발표한 “신념의 고정화(The Fixation of Brief)”란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에 의하면 ‘모든 학문은 의심에서 시작하여 탐구의 과정을 거쳐 신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의심은 모르는 것, 생소한 것을 알기 위해서 탐구로 이끌기 때문이다. 탐구의 결과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탐구란 의심에서 시작하여 신념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사고과정이며, 그 목적은 신념의 확립에 있는 것이다. 퍼어스에 의하면, 신념의 확립에 기여하는 중요한 방법은 과학적 방법이다. 이와 같이 그는 ‘관념을 명료하게 하고 신념을 고정화하는 방법’을 제시하여 실용주의를 수립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제임스는 퍼어스가 말한 관념이나 신념이 인간의 경험에서 어떤 몫을 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사고한 철학자다. 제임스는 미국 특유의 또 다른 실용주의적 사고를 내놓게 되는데, 실용주의를 어떤 연구 성과가 아니라 연구방법론으로 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학설이나 관념이 참된 것이냐 아니냐는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효과에 의해서 보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학설이나 관념은 사람에게 유용하고 만족스런 효과를 주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용하고 만족스런 효과를 주는 것이야말로 실제적인 결과로서의 사실로 판명되는 것이다.
제임스는 경험으로 검증 가능하면 그 관념은 참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검증이란 진리화의 과정이며, 진리는 관념이 경험에 의해 사실과 일치되는 것을 뜻한다. 진리는 항상 결과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관념은 언제나 경험에 의해 부단히 검증되어 새롭게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된 관념은 개인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 구체적인 활동에 가치가 되는 것, 행위로 옮겼을 때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관념은 개인에게 유용할 때 참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거짓이라는 얘기다. 만일 실제적인 결과를 낳을 수 없는 관념이라면, 이는 무의미한 것이거나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듀이의 경험주의 철학은 전통적인 감각경험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확대된다. 경험은 감각적인 활동을 포함하여 생리적, 인류학적, 문화적 활동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경험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살아간다는 뜻에 가깝다. 경험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질서 있는 맥락을 가지고 연속되면서 성장한다. 경험이란 즉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이면서 지속적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듀이가 말하는 경험은 상호작용의 원리요 지속성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유기체로 살아간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기도 하고, 환경을 개척해서 바꾸기도 한다. 이 경우에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 혹은 도구가 되는 것은 개념, 지식, 사고, 논리, 학문이다. 듀이에 의하면 지성의 인식작용은 환경에 대한 적응작용의 발전 형태이며, 관념이나 개념은 이러한 적응작용을 돕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우리의 생명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개념이나 관념이라면, 이는 행위의 결과에 따라서 검증되고 끊임없이 수정돼야 마땅하다.
듀이는 환경에 적응하는 도구로서의 관념이나 개념이란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리로 인식되고 있는 개념이나 관념은 인간이 환경에의 적응과정에서 능동적인 지성이 만들어 낸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환경에 접하여 적응하기 위해 개조된 실험적 행위의 성과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이나 관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로서 개조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개념, 관념, 사상 등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도구와 같은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듀이가 말하는 탐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어떤 관념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검증을 통해 진리화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