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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톡릭과
중국화교의 갈등
1500년간 기독교 국가였던 프랑스에는 마을마다 교회요 동네 마다 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회당이 많다. 교회는 오랫동안 프랑스인들의 생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나면 교회에 출생신고를 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결혼식도 교회에서 올리고 죽으면 사망신고도 교회에 하였다. 이는 교회가 동네마다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 지만 지금은 이러한 호적기록은 모두 국가의 몫이 되었다.
프랑스의 무수한 교회당은 프랑스
문화유산 가운데서 큰 비중 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도시의 주교좌 성당을 불어로는 ‘카테 드랄’이라고 하는데 주교가 앉는 의자를 의미하는
그리스 말 ‘카테드라’에서 온 말이다. 프랑스에는 이러한 대성당 외에도 수도원들이 곳곳에 있다. 원래 수도원은 인생을 오로지 신에게 바치고
평생을 기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집을 의 미한다.
우리나라의 불교사찰과 같은 것이 수도원인데 프랑스 의 수도원들도 다양한 집단에 속해 있다. 수도원 건물들도 오 래된 것이 많지만 수도원들은 학문의 전수와 서적의 필사와 보 관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옛날에는 많은 학자와 교사들이 이들 가운데서 배출되었다.
회교의 신장에 따른 종교갈등
현재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우선 미사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는데 특히 젊 은이들이 교회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사제가 되려는 성 직자 지망생들이 줄어 가톨릭 교회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반 대로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대립각을 세워온 회교도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들이 늘어 남에 따라 프랑스
종교지형에서 차지하는 회교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회교도들의 경우 기독교도들에 비해 세속화의 세 례를 훨씬 적게 받았기 때문에 종교로서의 이슬람은 그 힘이 갈수록 강해진다는 느낌을 준다. 기독교를 프랑스의 주요한 정 체성의 요소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간혹 회교 사원(모스크) 건립 문제를 둘러싸고 프랑스 원주민들과 회교 이민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최근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라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점 점 높아가는데 이것도 이러한 종교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여겨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