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인품과 미덕
칭기즈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제국을 건설한 삶의 과정을 통관해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대업을 이뤄 냈는지 그려볼 수 있다. 칭기즈칸의 인품과 자질, 상황에 대응하는 자세와 미덕 등에 대해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는 강인함이다. 칭기즈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린 시절의 고난을 겪으며 몸에 밴 테무친의 고독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어진 모든 악조건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사람으로 그가 지닌 미덕을 말이다.
그는 드넓게 트인 대지 같은 마음을 지녔다. 개방적 성격과 행동은 그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아내 보르테가 약탈당했을 때 자신의 힘없음을 원통해하며 참담한 현실을 슬퍼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력 확장의 천재일우 기회로 활용하고, 아내가 만삭의 몸으로 적의 아이를 낳았을 때도 운명을 감수한다. 그리고 나그네라는 뜻의 몽골어 ‘주치!’라고 맏아들 이름을 지어 준다. 적의 아이조차 자신의 아내의 뜨거운 자궁에서 나왔기에 신이 주신 손님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위기 앞에서 절망하지 않는 정신은 불행을 완벽하게 뒤엎는 기능을 한다. 그는 불행 앞에서 분노나 복수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았다. 좌절에 빠져 넋을 놓지 않았고, 용서와 화해를 위한 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운명을 직시하고 운명과 싸운 진정한 영웅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신에게 무엇이 없고, 무엇이 필요하며 어디를 향해 가고 어떻게 그 길을 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였다. 인내, 포용력, 냉정함을 가슴에 길렀다. 모친인 후엘룬은 테무친의 장점을 “테무친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소박하지만 확고한 장점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이는 다정한 사람, 배짱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가 외유내강 형 지도자였음을 말해 준다.
둘째, 부족의 운명을 사랑하여 구원해 내는 모습이다. 칭기즈칸의 보르치긴 씨족은 가련하고 위기에 처한 굶주린 늑대와 같은 부족이었다. 언제라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가혹한 환경 속에 내버려진 채 지도자도 없이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이 연약하고 분열된 부족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과정, 그게 바로 테무친이 칭기즈칸이 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칭기즈칸은 시련의 악순환을 끝매듭 짓고 평화를 가져온 왕 중의 왕이었다.
셋째, 평화를 위해서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했다. 칭기즈칸은 유목민 사회를 통합하고 정착민의 성벽을 무너뜨린 대전사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는 집단이 승리하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효율적인 군사 제도와 행정 제도를 중시하였다. 유연한 자세로 정복지 포로들을 언제라도 끌어들여 보충하였다. 군대는 표준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토와 인구가 확장되어도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군대와 전쟁의 역사는 칭기즈칸 이후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넷째, 제국을 건설한 후 위대한 정치인이 되었다. 지도자 칭기즈칸은 유목민의 틀 안에서 벗어나 사려 깊은 심성과 건전한 상식을 가진 균형 잡힌 사람이자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었다. 행정가의 자질도 보여, 법령을 선포하고 법에 의한 통치를 이끌어 냈다. 또한 세종대왕처럼, 위구르어를 약간 수정하여 몽골인의 민족 문자가 되게 했다. 칭기즈칸 일가 3대에 걸친 통치로 유라시아는 보기 드물게 안정을 누렸다. 상업을 진흥시켰고, 역참제를 통해 문서와 서신, 물자들이 신속하게 이동하였다. 통행세를 폐지하고 통상로를 안전하게 하여 진정한 동서양의 교류가 이루어지게 했다. 이로 인해 14세기에는 위대한 여행가들의 대륙 여행이 가능해졌다.
다섯째, 신앙인으로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종교에 대해 매우 관용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들 자신은 유일신인 천신을 숭배하였다. 천신을 텡그리라 하였다. 유일신을 믿었다고 해서 다른 하위의 신들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신과 접해서 그 뜻을 알아내는 샤먼을 두었는데, 그중 우두머리는 ‘천상에 가까운 자’란 의미로 텝 텡그리라 하였다. 칭기즈칸은 그의 곁에 자신이 천하를 얻을 것이라고 예언한 코코추라는 샤먼을 두어 의견을 경청하였다. (그를 따랐던 뭉릭의 넷째 아들은 무당이며 이름이 텝 텡그리로, 텡그리의 메신저가 칭기즈칸 옆에 있다는 의미로 당시 사람들은 인식했다)
칭기즈칸은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의지를 받드는 샤머니즘이란 의미로 ‘텡그리즘’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언제나 텝 텡그리, ‘푸른 하늘’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푸른색靑色을 숭상하였고 연관을 짓기도 하였다. 쫓기던 아이 시절, 숨어 지낸 호수는 푸른 호수였고, 그의 군대는 푸른 군대, 모두 푸른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그 푸른 하늘의 뜻으로부터 그의 성품과 기질이 나온다. 우주 삼라만상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우열의 층차가 없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모두 푸른 하늘의 뜻이니…. 이런 종교적 인식에 영향을 받아 칭기즈칸은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관용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칭기즈칸은 세상 사람 누구나가 각자의 신을 알아서 믿을 수 있도록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그의 통치 아래서 모든 종교는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