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보2017. 11. 12. 01:00




 

칭기즈칸의 사람들

4준四駿

 




칭기즈칸은 희대의 영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이룬 개척의 역사를 혼자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에게는 함께 열망을 품고 온몸을 불사른 동지들이 있었다. 칭기즈칸은 남의 재능을 평가하고 활용하는 데 어떤 편견도 없었다. 출신과 계급에 관계없이 오직 능력 순으로 선발했다. 여기에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칭기즈칸의 성격 덕분에, 그의 부하들은 빨리 결과를 보여 줘야 하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칭기즈칸은 유달리 너커르(평생동지), 안다(평생친구)가 많았다. 칭기즈칸에게 너커르는 부하나 참모가 아니라 동지였다. 동지들끼리 뭉쳐서 일하지만 그래도 단일 창구가 필요한데, 칭기즈칸은 그런 유형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했다. 오갈 데 없는 사람, 어려운 사람, 꿈은 품고 있지만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칭기즈칸의 제국 건설의 주역이 되었다.

칭기즈칸 곁에는 전설로 기록되는 ‘네 마리의 준마駿馬’ 와 ‘네 마리의 개’라는 여덟 명의 인물이 있었다. 이 이름은 칭기즈칸과 싸웠던 적들이 붙여 준 것이다.

 

네 마리 준마는 참모를 겸한 장군이다. 보르추, 무칼리, 칠라온, 보로쿨을 말한다.

 


<보르추>

는 칭기즈칸이 말을 잃어 버렸을 때 그를 도와 말을 찾아준 부잣집 막내아들 출신이다. 칭기즈칸은 신세를 진 대가로 말을 나눠 주겠다고 했다. 보르추는 단호히 거절했다. “벗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벗의 의무다. 도움의 대가로 말을 받는다면 그가 무슨 벗이겠는가.”

 

물질의 만남이 아니라 마음의 만남이며, 거짓과 배신이 춤추는 땅에서 믿음과 의리가 깃발을 올리는 첫 발자국이었다. 10대 칭기즈칸은 그 관계를 신성하게 여겨 다음과 같이 속마음을 전했다. “그림자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을 때 친구가 되어, 나의 마음을 편안케 했다. 꼬리 말고 다른 채찍이 없을 때 채찍이 되어 나의 심장을 편안케 했다.”

 

칭기즈칸 최초의 너커르로 제국의 공동 2인자이자 최고 개국공신이다. 젤메와 마찬가지로 칭기즈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사적으로는 격의 없는 친구 사이였다. 칭기즈칸은 보르추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길 때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애마를 내어 줄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칭기즈칸은 몽골 통일 후 의리의 사나이 보르추에게 알타이 부근 만호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보르추는 칸 옆에서 거침없는 충고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무칼리>

는 노예 씨족인 잘라이르 출신으로 주르킨족 노예로 살다가 칭기즈칸이 주르킨을 정벌하자 부하가 되었다.

 

프랑스 학자 펠리오와 앙비스는 그가 고려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전투에 뛰어난 재능도 없고 성과를 내는 데도 느렸지만, 정밀하게 사고하는 능력이 있었다. 신중하고 끈기가 있어서 장기적인 전략을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몽골초원 통일의 분수령이 된 옹칸과 마지막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 서서 돌격해 들어갔다. 대몽골제국 총사령관이 되었고, 칭기즈칸이 내린 결정도 바꿀 수 있고, 9가지 죄 말고는 어떤 죄도 물을 수 없는 공신 중의 공신이 되었다.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정벌한 뒤 그에게 권權 황제라는 칭호를 내려 황하 이북을 통치하게 했는데, 고려 사람이라면 권씨였을지도 모른다. 무칼리는 너무 열심히 싸우다 탈진하여 1223년 봄, 53세에 풍운의 삶을 접었다. 그의 아들과 손자 3대에 걸쳐 과로사 할 정도로 충성을 다했다.

 

<칠라온>

칭기즈칸이 타이치우드족에 포로로 있을 때 그를 도와준 소르칸 시라의 아들이며 사적으로는 친구 사이이다. 형제 칠바이도 칭기즈칸의 중요한 부하였다. 용맹한 칠라온은 한번 문 목표물은 절대 놓지 않았다. 한번은 전투 중 낙마하자 적들이 덤벼들었다. 초원 전투에서 낙마하고 보병으로 싸운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칠라온이 창을 고쳐 잡고 적 기병과 맞서 싸우니 기세에 밀려 적들이 달아났다고 한다.

 

금나라 정벌에 참가했다가 죽었다. 훗날 칭기즈칸이 포상할 때, 칠라운의 아버지 소르칸 시라가 아들들을 대신해 천호장을 제수받는다.

 

<보로쿨>

4준마 중 가장 젊다. 칭기즈칸이 주르킨족을 정벌할 때 적진에서 거둬들인 전쟁고아였다. 칭기즈칸은 어머니 후엘룬이 그를 거둬 양자로 삼게 했다. 즉 칭기즈칸과 의붓형제가 된 것이다. 방패를 들고 칭기즈칸을 호위하는 측근 중 측근이다. 칭기즈칸은 그를 동생처럼 여겼다. 그는 칸의 음식을 맛보는 사람(부케울)과 요리사(바우르치)역할을 했다. 전투 이상으로 중요한 임무로, 급한 원정 중에도 비오는 밤에도 적과 대치하고 있을 때도 늘 음식을 제공해 칸의 속을 든든하게 했다.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와 절친한 사이였다.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았지만 요절하였다. 그의 딸 우시진은 원 세조 쿠빌라이칸의 아내가 됐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