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사람들
4구四狗
네 마리의 개는 싸움개의 이미지가 강한데, 신임하는 부하를 개라고 하다니 하겠지만, 몽골에서 개는 욕설이 아니다. 애정 가득한 표현으로 개는 인간을 따르는 늑대이다. 몽골에서 늑대는 존경받는 토템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늑대는 소속과 주군이 생기면 개가 된다. 충성스럽고 용맹하며 끈질긴 이들. 사납기도 하고 머리도 좋은 이들이다. 네 마리 개는 대장군으로 젤메 고아, 제베, 코빌라이 그리고 수부타이이다.
[젤메 고아]는 몽골 사람들 가슴에 충용의 상징이다.
‘고아’는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무당’이라는 뜻이다. 젤메의 아버지 차르치오다이(대장장이 일도 하였다)는 대 샤먼으로 대를 이어 칭기즈칸 집안에 충성을 다했다. 칭기즈칸 가족이 보르칸 산에 숨어 있을 때 젤메를 칭기즈칸에게 맡겼다. 그는 1204년 나이만족의 타양 칸과 벌인 ‘알타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 이 전쟁에서 ‘4맹견’이란 호칭이 탄생한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임기응변이 능해 다양한 군사 작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칭기즈칸의 전략과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칭기즈칸의 ‘아바타’였다. 평시에는 칭기즈칸의 케식Kheshig(왕실친위대)을 지휘했다. 수도방위사령관과 청와대 경호실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칭기즈칸이 “태어날 때 함께 태어나고, 자랄 때 함께 자랐다”며 친형제처럼 지내던 그는 대몽골 제국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사한다. 수부타이의 친형이다.
[제베] 전투에 관한 한 프로 중 프로였다.
활을 잘 쏘는 몽골족 사이에서도 명사수였다. 원래 칭기즈칸의 적일 때, 활로 칭기즈칸 목을 꿰뚫기도 했다. 칭기즈칸의 목을 관통한 화살촉은 훗날 유라시아 전역을 휩쓴다. 적군이었던 그를 받아들여 ‘화살촉 또는 날 끝’이라는 뜻으로 제베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답게 속도전의 대가로 빠르고 정확한 행동과 이동으로 지구상에 따라올 장수가 없었다.
서역 정벌에서 맹활약을 한다. 호라즘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함락시키고 술탄 무하마드를 추격한다. 추격전은 1만km 가까이 계속되었고, 무하마드는 카스피해 작은 섬으로 숨어들어 걸칠 옷도 없이 죽는다. 제베는 무하마드의 목을 들고 초원으로 귀환하던 1224년 삶을 마쳤다.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로, 전투에서 보여준 집요함은 ‘개’라는 별명에 딱 맞는다.
[코빌라이] 가장 덜 알려진 인물로 원 세조 쿠빌라이와 동명이인이다.
칭기즈칸이 자무카와 동맹을 맺고 공동 유목을 하다 갈라섰을 때, 칭기즈칸을 따랐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지만 칭기즈칸의 동생 카사르와 함께 군율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임무를 받았다. 부여한 임무를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실현하였기에 건물의 뼈대처럼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1211년 금나라 정벌전에서 전사하였다.
[수부타이] 최고의 전략가이자 장군이다.
전쟁의 신이라 불렸다. 전차 부대를 지휘하였다. 그의 철제 전차 부대는 가공할 파괴력을 지녔다(또는 이 철제 전차 부대는 철제 무기와 갑옷, 도구 수리를 위한 이동식 대장간이었다는 설도 있다). 정통 몽골 부족이 아닌 삼림지대 부족원이었기 때문에 말을 타거나 활쏘기에 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젤메를 비롯한 칭기즈칸 수하 최고 지휘관들이 벌이는 토론과 거기서 오고 가는 질문들을 직접 보고 들었다. 10년 동안 지휘관들의 전투 계획과 그에 따른 수행 능력에 대한 사후 보고, 분석을 둘러싼 논의 과정을 통해 탁월하고 매우 실용적인 군사 교육을 받았다. 전쟁 계획을 구체화하고 대규모로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한 셈이었다. 외부 문화나 기술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고 이를 즉시 군사 전략과 전술에 반영하여 몽골군이 더 강해지는데 기여했다(이런 태도는 수부타이뿐만 아니라 몽골 지도층의 기본 태도였다).
제베의 부관이었다가 금세 제베와 같은 등급의 대장군으로 성장했다. 제베와는 전설적인 콤비를 이뤘다. 제베는 기동전의 명수였고, 수부타이는 회전(회전會戰은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총력 대결을 펼치는 전투로, 특성상 국운을 건 모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명장이라도 일생 5회 이상 회전을 경험하기 힘들다)의 천재였다. 결정적인 대전투의 설계자로 전쟁의 큰 그림을 그리고 현실화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칭기즈칸 사후 유럽 정벌의 실질적인 사령관이었다. 1221년부터 러시아 정복을 주장하고 추진한 인물로 단 2만 병력으로 쉴 새 없는 기습전을 통해 러시아를 단기간에 초토화시켰다. 1236년 마침내 12만 명이 동원된 러시아 본 원정에서 3년 만에 러시아를 정복하였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실패한 러시아 정복을 이룬 유일한 인물이다.
그가 정복한 나라는 32개국에 달하고, 61번 회전에서 승리한다. 그가 이룬 제국의 영토는 헝가리 국경부터 동해까지, 노브고로드 외곽으로부터 페르시아만까지, 바이칼호부터 양쯔강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이었다. 당대 중국인들은 그를 ‘신의와 불변의 장수’라고 칭하며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대몽골제국의 3대에 걸친 칸-칭기즈칸, 오고타이칸, 구육 칸-으로부터 예우를 받았다. 특히 수부타이는 제베와 함께 호라즘 술탄 무하마드 추격전을 통해 몽골의 복수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그는 칭기즈칸에게는 더없이 충직한 부하였는데, 서역을 정벌하던 그에게 칸이 귀환 명령을 내렸다. 뚱뚱한 수부타이는 1주일 동안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칸에게 돌아왔다. 말의 반동을 견뎌 내려고 자기 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였다. 72세로 다뉴브 강가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