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2017. 11. 18. 02:00




 

 

해석학의 선구자

빌헬 딜타이

 

 

 




딜타이는 베르그송처럼 “지속持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일회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거나 블롱델처럼 이를 우주적인 넓은 의미에까지 확장하여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현실적인 삶에만 한정하여 그 자체로부터 이해하려고 한다. 딜타이는 삶이란 현실적인 삶 자체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과정은 시간에 따른 순간순간의 흐름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실적인 모든 것은 반복되지 않고 일회적으로 지나가 버린다. 현실적인 삶은 그러한 끊임없는 운동과 변화로 이루어지게 마련인 셈이다. 이러한 일회적인 삶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논리적인 지성에 의거해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딜타이에 있어서 현실적인 삶은 전체와 부분이 서로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그런 것이다. 전체 없이 부분은 없고, 부분 없이 전체는 없다는 논리가 현실적인 삶에 적용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전체를 이루는 부분적인 삶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늘 새롭게 체험하게 되는 삶이다. 이러한 체험적인 삶의 바탕에는 실제로 무엇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현실적인 삶에는 새로운 체험에 스며들어 개별적인 특징을 이루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의식상태(Bewußtseinsstand)이다. 그래서 딜타이는 삶의 체험과 이해를 전개해감에 있어서 먼저 인간의 심리적 구조(Struktur)의 분석으로 눈을 돌린다.

 

인간의 의식상태는 두 측면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의식의 횡적구조橫的構造인데,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의 내용을 체험하는가 하는 체험 내용을 받아들이는 의식상태이다. 다른 하나는 의식의 종적구조縱的構造인데, 내가 나의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 체험하는가(나는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장차 행위하게 된다) 하는 총체적인 바탕으로서의 의식상태이다. 이 의식의 상태도 일정한 의지의 태도 또는 특별한 감정의 상태로서 체험된다. 이러한 의식의 구조를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심리적(영혼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영혼적)인 이해는 지성의 힘으로는 부족하고 심성心性이 송두리째 투입된 체험에서 체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 삶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삶에 대한 이해는 바로 삶에서 삶에로의 운동이고, 삶의 과정은 곧 역사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삶은 자신 속에 있는 모든 심정적 힘의 협동과 그 연관에 의거해서 삶에서[정신과학의 역사] 삶에로의 운동이고, 이를 통해 이해된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 방식을 토대로 하여 통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딜타이의 해석학(Hermeneutik)은 바로 이러한 정신과학과 특히 인간의 자기성찰이 요구되는 역사의 영역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본다.

 

이러한 정신과학의 역사에서 심리적 구조에 적합한 것은 정신사적인 유형(Typus)이다. 유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 자체의 형식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러한 형식(유형)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자연주의, 주관적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 등의 여러 유형이 있는데, 정신사의 여러 현상은 이러한 유형들에 적용하여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들은 개별적인 삶의 과정을 꿰뚫고 있고, 개별적인 정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딜타이는 정신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간파하려고 했으나 결국 개별적인 유형들과 다양한 입장들만 발견해 내는 데에 그쳤다. 그는 이런 다양한 개별적인 유형들에서 정신적인 삶의 풍부함을 드러냈으나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뜻을 밝혀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헤겔은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하나의 절대자를 드러냈으나 딜타이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상대주의적 입장만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딜타이는 ‘이해’와 ‘유형’에 관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정신과학적 방법이라는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밝혀졌으나 상대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전형적인 역사주의자로 머물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존재하는 것은 삶이고, 삶이란 오직 시간에 따라서 흘러가는 일회적인 것이고, 언제나 새로운 개별적인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 딜타이의 입장이다. 이는 삶이란 보편적이고 구속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를 더해주는 그런 것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