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2017. 11. 19. 01:00




 

 

서구 몰락을 예견한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해와 달이 나의 명(命)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천지개벽(天地開闢)도 음양이 사시(四時)로 순환하는 이치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 천지의 모든 이치가 역(易)에 들어 있느니라.”

-『도전道典』2:20:1~5

 

슈펭글러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지은 『서구의 몰락(Untergang des Abendlandes)』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이 책에 의하면 역사는 삶의 현상이다. 삶의 현상은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한 전형적인 형식은 식물의 생장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봄철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터서 잎들과 가지들이 돋아나고, 여름철이 되면 무성하게 성장하고 꽃이 피며, 가을철이 되면 꽃이 지고 열매가 무르익으며 잎이 떨어지고, 겨울철이 되면 열매를 저장하고 휴식으로 들어가 다음 해를 준비한다. 식물의 경우에서 생명의 현상은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는 순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그렇게 진행된다고 본 것이 슈펭글러의 입장이다. 요컨대 삶의 현상은 어떤 일정한 형식에 따라 진행될 것이고, 이 형식들은 서로 비교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는 순환 법칙이 발견될 수 있다. 순환 법칙은 인간의 생명이 탄생하면[生] 유아기를 거쳐 청년으로 성장하고[長], 청년기의 정점에 이르면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장년이 되고[斂], 그 이후에는 반드시 쇠퇴의 길로 접어 노년에 이른다[藏].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이런 순환 형식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지나간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가올 것에 대한 예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슈펭글러의 입장인 셈이다.

 


이런 생물학적인 태도는 삶의 역사 현상이나 문화 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슈펭글러는 문화라는 것도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집트 문화, 그리스의 문화, 로마의 문화, 이슬람 문화, 기독교의 문화 등이 그 예이다. 요컨대 맨 처음에 종교와 신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되면, 탄생한 문화에 대한 정신적 각성이 일어남으로써 개혁이 되고, 계몽주의 시대와 같은 문화의 성숙 단계에 이른 다음에는 정신적인 창조성 고갈의 단계에 이르러 쇠퇴하는 주기를 반드시 거친다는 것이다.

 

슈펭글러는 새롭게 탄생하고 성장하여 전성기를 지나 몰락해 버린 문화에다 오늘날의 서구 문화를 적용함으로써 ‘서구의 몰락’을 예언한다. 그것은 그가 몰락한 문화에서 볼 수 있었던 몰락현상(Verfallserscheinung)이 서구 문화에 이미 나타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몰락현상으로 그는 합리주의와 기술의 우위를 들고 있다. 몰락한 문화에서 최후에 오는 것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의 문화가 지금 반성과 물질적 안락의 단계에 접어들었고, 민주주의, 세계시민주의, 휴머니즘사상, 평화주의, 인권과 동포애 등이 새롭게 생겨남으로써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서구의 몰락을 촉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슈펭글러가 밝히는 삶의 철학은 오직 ‘흐르는 삶’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헤겔의 철학에서처럼 하나의 절대자 안에서 모두 지양되는 삶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철학에서처럼 모든 사회적 · 역사적인 삶이 오직 하나의 유물변증법에 예속되는 것도 아니다. 슈펭글러의 삶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생물학적인 태도에 바탕을 두고서 역사의 과정을 추진해 나가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삶은 헤겔이 말한 절대적인 ‘이념’도 아니고, 베르그송이 말한 ‘삶의 약동’ 또한 아니고, 오직 생물학적인 생명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문제도 아니고, 영원한 진리의 발견도 아니라는 것이 슈펭글러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는 항상 보다 더 강하고, 보다 풍족하고, 보다 더 자신 있는 삶에게 권리를 부여해 왔기 때문이다. 이때의 권리는 생존의 권리이다.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는 생존을 위해 진리와 정의를 권력과 종족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삶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원초적인 삶이며, 언제나 종족과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의 개진凱陣뿐이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