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정보2017. 11. 2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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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칭기즈칸

몽골군의 무기들

 

 




몽골 활

몽골 활은 우리나라 각궁처럼 복합 재질로 되어 있는 작고 가볍지만 강력한 활이다. 300m의 최대 사거리로 150m에서 실전 사용하였고, 50m로 근접해서는 어떤 갑옷도 관통하였다. 몽골군 기병 1인당 활 2~3개와 60발의 화살을 보유하였다. 화살은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여기에 최소한의 보급만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으로 보급 문제가 거의 없었다. 끌고 다니는 말의 젖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했다. 놀라운 기동력과 생존 능력을 지닌 이들에게 약점은 경기병이 지닌 약한 방어력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정면충돌보다는 활을 이용한 사냥 원진을 활용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효율적으로 공격해도 결국 정면 공격과 백병전으로 승패를 가늠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 몽골군은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유연성 있게 대처했다. 즉 이민족 출신의 중기병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래도 희생이 클 수 있는 정면 돌격에서 핵심 전력인 몽골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자신이 잘할 수 없는 분야에서 거리낌 없이 이방인들의 도움을 받는,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거나 자기들끼리의 힘만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몽골인들과는 가장 거리가 먼 방식이었다.

 

몽골인은 매우 실용적이었다. 피정복민들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정하면서 이들에게 그에 적합한 대우를 해주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인, 아랍인 공병대의 활약이다. 이들은 공성 무기를 끌고 다니지 않고 적의 요새 근처에서 주변 재료를 활용해 공성 무기를 제작해 냈다. 이런 몽골인들의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1258년 몽골군의 바그다드 포위 공격(티그리스강 도하 다리 설치, 초대형 투석기)이나 남송 정벌전(기병 중심 기동전에서 보병과 수군 위주로 전투 방식 변경, 회회포라 불린 투석기와 공성 무기와 고려 수군들)이었다.

 



 

몽골 말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몽골 기병의 힘의 근원은 몽골 말이다. 몽골군에게 말은 생사를 결정하는 존재로 영원한 동반자였다. 말 중 제일 멋있고 빠른 말은 오늘날 아랍종으로 불리는 중앙아시아 계통의 말이다.

 

이에 비해 몽골 말은 우리 조랑말과 비슷하다. 조랑말보다 체격이 약간 클 뿐, 머리는 크고 몸은 펑퍼짐해서 둔하고 느려 보인다. 몽골 말은 순간 속도는 처지지만, 뛰어난 지구력을 자랑한다. 말은 의외로 까다롭고 참을성이 부족한 동물이다. 하지만 몽골 말은 혹서와 혹한을 모두 견디며 산과 평지, 정글과 사막을 횡단한다. 몽골군은 이 말을 타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후대와 모든 지형을 정복했다(산악, 평원, 사막, 정글, 초원).

 

몽골 말의 이런 장점은 천성만으로 얻어진 게 아니다. 엄격한 훈련으로 길러진 것이다. 몽골인은 말에게 어려서부터 강한 인내심과 복종을 요구했다. 어미로부터 떼어 낸 새끼 말을 밤새 초원에 혼자 묶어 두어 공포감을 이겨 내게 하고, 언 땅을 파서 풀뿌리와 물을 찾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 추위와 더위를 이겨 내는 훈련, 굶주림을 참아 내는 훈련,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소리를 내지 않는 훈련이다. 춥다고 무섭다고 짜증난다고 울면 돌아오는 건 무시무시한 체벌이다. 칭기즈칸은 말이 더 빠르고 강하게 멀리 갈 수 있게 마구를 최대한 가볍게 했고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 재갈을 물리지 않는 건 폐활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장거리를 달리다 멈춘 말에게 곧바로 물과 풀을 먹이는 행위를 금지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방금까지 뛴 말의 앞발과 뒷발을 묶어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다 말의 숨이 가라앉고 나서야 물과 풀을 먹였다. 격렬한 운동 뒤 몸을 잠시 긴장하게 하여 근육이 제자리에 잡히도록 하는 것이다. 말에게는 지옥이었다. 피나는 훈련과 노력으로 전투에 적응하고 기수에 복종하게 했다. 칭기즈칸은 이런 방식을 엄한 명령으로 시행하며 지침을 강요했다. 말은 건강하고 빠르고 유연해졌으며 말 자신이 전사가 되어 갔다.

 

몽골군은 1인당 3마리 말을 데리고 다녔고, 암말을 선호했다. 말의 젖을 발효시켜 음료 쿠미스kumis를 얻었다. 언제나 말과 교감하며 살았고 자신의 말을 지극히 사랑했다. 몽골이 중국을 정복한 뒤 화가에게 자신과 말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았고, 뛰어난 말의 두개골을 유품으로 간직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몽골군은 말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칭기즈칸은 말의 기본권을 배려했다. 군용마 퇴역 제도였다. 일정 기간 전쟁을 겪거나 한 번 이상 장거리 원정에 참여한 말은 초원으로 보내 버렸다. 말 그대로 ‘전역’한 것이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군용의 삶이 끝나면 고기와 가죽의 재료가 되었는데, 칭기즈칸은 자신의 울루스에 태어난 죄로 갖은 고생을 한 말을 예우한 것이다. 훈련과 전쟁에서 해방돼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여생을 살게 해 준 것이다. 초원에서 가장 중요하고 한정된 자원인 풀을 복지 차원에서 퇴역마에게 내어 준 것이다. 그것도 기꺼이!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