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Phänomenologie)을 완성한
막스 셀러Max Scheler
20세기 초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식론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운동이 일어난다. 바로 객관과 본질에로의 전환을 문제 삼은 현상학現象學(Phänomenologie)이 그것이다. 현상학의 모토, 즉 “사태 그 자체에로 돌아가라(Zurück zu den Sachen selbst)!”는 구호는 이를 말해 주고 있다.
현상학은 본래 탐구 방법일 뿐이다. 이는 현상들이 본래 갖고 있는 본질, 즉 현상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작업을 말한다. 그럼 현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식에 나타나 있는 것, 한마디로 체험(Erlebnis)이다. 이렇듯 현상학은 의식에 나타나 있는 것을 철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태에 충실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직관과 발견의 도움을 받아 사태 그 자체의 본질 내용을 기술하는 처방이 바로 현상학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의미의 현상학은 진리인식의 명증적인 지반을 찾고, 이 지반이 모든 인식의 최종적인 원천임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발전시키는 데에 결정적으로 원동력이 된 철학자는 독일 출신의 에드문트 후설Edmund Gustave Albrecht Husserl(1859~1938)이고, 그가 제시한 내재적인 의식 현상의 영역을 넘어서 가치, 인간, 세계, 신(하나님) 등의 커다란 주제에로까지 확대하여 현상학을 완성한 철학자는 막스 셸러Max Scheler(1874~1928)이다.
“삼신 하나님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一神降衷] 사람의 성품은 삼신 하나님의 대광명에 통해 있으니[性通光明] 삼신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서[在世理化]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弘益人間].”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극대로 확대하여 현상학을 완성한 철학자는 막스 셸러Max Scheler이다. 왜냐하면 그는 후설이 의식 내부로 들어와 사태의 본질을 밝히는 내재적 철학을 가치, 인간, 세계, 절대자(신)의 영역에까지 넓혀 나갔기 때문이다.
셸러가 수행한 철학적 주요 업적은 뭐니 뭐니 해도 가치의 영역을 발견하여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점이다. 그에 의하면 원천적으로 낡은 가치도 새로운 가치도 없고, 그저 가치들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치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직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문화와 역사의 진보에 따라 인간의 시야에 새롭게 들어오는 것이 가치라는 얘기다.
그저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단순히 쳐다보는 수밖에 없다. 쳐다보더라도 가치를 볼 눈이 없는 사람은 가치를 알지 못한다. 요컨대 유물론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은 가치를 보는 눈이 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형식에 얽매여 있어도 가치를 볼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형식주의 때문에 윤리적인 선善의 가치 내용을 간파하지 못했다고 셜러가 칸트Kant를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셸러에 의하면 사물은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고, 오로지 그 내용을 통해서 그 가치가 정당화된다. 요컨대 인간의 어떤 행위가 윤리적으로 가치 있게 되는 것은 그것이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에나 부모님께 효도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로부터 후설이 말한 현상학적 본질직관은 셸러에게 있어서 가치직관으로 전환이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간은 가치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어 있을까? 셸러는 감각적인 사물이란 지각되는(wahrnehmen) 것이고, 그 개념이란 생각되는(denken) 것이고, 그 가치란 느껴진다(fühlen)고 말한다. 가치를 느끼는 것은 바로 가치들을 냄새 맡는 지향적인 작용 때문이다. 이것을 셸러는 가치감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가치를 느끼는 그러한 감각을 갖게 된다. 이는 심리학에서 즐거움[快]이나 즐겁지 않은[不快] 것을 느끼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양의 유가儒家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사단지심四端之心이 발현되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가치감각에 가깝다.
가치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인간다움이 형성된다. 인간다움에서 인격人格이 나온다. 인간은 여러 사물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인격이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사물들과 현격하게 구분이 된다. 그러한 인격은 타고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이는 인격이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처럼 인간의 본질적인 것으로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인격은 심리적인 작용의 총화와 같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심리적인 작용이란 인격이 이용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은 가치감각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형성될 수 있고, 끊임없는 행위로 그 전모가 드러난다. 인격을 드러내는 행위는 다른 사물들처럼 인과적 결정이나 유전인자나 어떤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는다. 인격은 자유로움 속에서 가치들을 실현해 감으로써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격적인 행위만이 마음의 내적인 질서와 부합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가치의 세계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고, 결국 최고의 가치존재인 근원의 인격적 존재, 즉 절대적인 신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셸러가 제시한 인격주의는 우주 전체에 있어서 인간의 지위를 굳히는 학설이 되는데, 이는 인간이 가치감각과 본질에 대한 앎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정신(Geist)이 되고, 이 정신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타의 동물은 비록 생각하고 목적을 헤아리는 성향을 가질지라도 진리와 가치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본질과 가치를 직관하는 정신을 통해서만 인격적인 인간으로 되어 가는 존재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정신은 세계의 과정 전체에 관여하고 있다. 헤겔이 말한 이념과 마찬가지로 정신은 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을 순화하게 함으로써 세계화 과정이 완성된다. 그런 세계화 과정을 이루는 한 단체團體가 인간이다. 우주적인 삶이 세차게 발전해 가는 시간적인 지속 중에서 인간은 신적인 것 자체가 되어 가는 과정에 짜 넣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신적인 것이 아직도 진행 중인 한, 빛과 어둠의 극적인 투쟁 속에서 가치실현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신적인 것이 완성되는 날 모든 가치실현 또한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