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의 근대역사
자치정부 시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에 따라 싱가포르는 1946년 총독이 지배하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환원되었으며, 영국은 크리스마스Christmas 섬과 코코스Cocos 섬을 관할하였다. 이후 싱가포르 주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가 태동함에 따라 영국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단계적으로 자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형태의 식민정책으로 전환하였다. 1948년 최초의 선거가 실시되어 22명의 입법 의원 중 6명을 직선제로 선출하였고(나머지는 총독 또는 상업회의소가 임명), 1951년에는 25명의 입법 의원 중 직선 선출 의원 수를 9명으로 증원하였는데 진보 정당(Progressive Party)에서 6명, 노동당(Labour Party)에서 2명, 무소속 1명으로 구성되었다. 1955년에는 신헌법을 채택하여 32명의 입법 의원 중 직선 선출 의원 수를 25명으로 선출하기로 결정(코코스 섬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관할권 이전)하였다.
1957년 런던에서 개최된 헌법 회의는 원칙적으로 싱가포르가 독립국가가 된다는 데 동의하고 싱가포르에 대해 완전한 국내 자치권을 인정하되, 외교 국방 및 헌법 정지에 관한 권한만 영국 정부가 보유하기로 결정하였다. 1958년 싱가포르 국가 법(The State of Singapore Act)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싱가포르 국가 성립 및 싱가포르 시민권 부여 등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크리스마스 섬은 오스트레일리아로 관할권이 이전되었다. 1959년 5월 30일에는 전체 입법 의회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어 총 51석 중 인민행동당PAP(People’s Action Party)이 43석을 차지하여 자치 정부를 구성하였고 같은 해 6월 5일에는 8선 국회의원인 리콴유Lee Kuan Yew(李光耀)가 자치 정부의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말레이시아 연방 시대
1961년 5월 27일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man 말레이 총리는 말라야Malaya 연방, 싱가포르Singapore, 사라왁Sarawak, 브루나이Brunei 및 북보르네오北Borneo(현 사바Sabah)로 구성된 말레이시아 연방 설립을 제의하였고 싱가포르 정부는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1962년 8월 1일 영국과 말라야 연방은 1962년 8월 말까지 말레이시아 연방을 설립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싱가포르는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1962년 9월 1일에 실시하였다. 투표 결과 73%가 말레이시아 연방 구성원이 되는 데 찬성하여, 1963년 7월 9일 말레이시아 협정 서명으로 인해 같은 해 9월 16일에 말레이시아 연방이 성립됨으로써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연방 창설 이후 연방정부와 싱가포르 주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정책에 대해 이견을 보였으며, 1964년에는 인종 문제로 인한 폭동이 싱가포르에서 발생하였다. 결국 싱가포르는 인종 정책에 관한 갈등과 이념적인 차이로 인해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하여 독립국가로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