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하이데거의
무(無)를 꿰뚫어가는 탈존자(脫存者)
인간을 포함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일체의 존재자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엔 ‘무(無)’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실존적인 인간만은 어디론가 사라지게 될 대상이 없는 불안 속에서 마침내 텅 빈 ‘무’와 마주치게 된다. 텅 빈 ‘무’의 상태와 마주한 현존재는 일체의 존재자를 벗어나 초탈(超脫)한 상태일 것이다. ‘무’를 향해 초탈한 현존재의 실존은 스스로 ‘무’ 속으로 함몰해 있다는 의미에서 “탈존자”(Ek-sistenz)라고 할 수 있다. 탈존자는 일체의 존재자에게서 초연(超然)한 상태로 있으면서 존재자의 근원을 묻는 자로 임하게 된다.
존재자의 근원에 대한 탈존자의 물음은 종교적인 의미에서 완전한 ‘신(神)’의 존재로 귀착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마저도 사유를 통해 대상화되는 ‘존재자’에 속하며, 신도 결국 ‘무’에 근원하는 존재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존자는 신의 존재 근원에 대해서도 같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이데거는 무신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는 정말 무신론자였을까?
어쨌든 탈존자는 모든 존재자의 근원을
묻는 상태에서 ‘무’를 꿰뚫어나가는 과정에 처할 것이고, 이럴 때 비로소 ‘존재’ 그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무’는 존재자에 대한 무화(無化)로서의 ‘무’이고, 일체의 존재자와 전적으로 상이한 극단적인 타자(他者)를 뜻한다는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면사포”(der Schleier des Sein)라고 표현했다. ‘존재의 면사포’란 탈존자가 ‘무’를 꿰뚫어가는 과정에서
존재가 스스로 참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하는 단면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면사포에 감춰진 ‘존재자체’는 대상화될 수도 없을뿐더러 존재자로 규정되는 여하한 개념이나 표상적인 사유에 의해서도 파악될 수 없다. 하지만 ‘존재자체’는 모든 존재자를 근원적으로 밑받침하는 지주(支柱)이며, 만유 속에 깃들어 있는 진정한 존재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