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학단의
논리적 실증주의
금세기에 내적으로 단단하게 짜여진 하나의 학파를 이루어 철학적 운동을 새롭게 전개한 단체가 있다. 바로 비엔나 학단의 논리적 실증주의가 그것이다. 이 단체는 1929년 비엔나에서 『과학적 세계관』(Wissenschaftliche Weltanschauung)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일군의 철학자들이 동참하면서 논리적 실증주의가 출범하게 된다. 자칭 비엔나 학단이라 칭하는 이 단체는 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 학단의 중심에는 세미나를 주재해가던 저명한 학자 슐리크Moritz Schulick(1882~1936)가 있었다. 슐리크는 독일에서 출생하여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납적 과학철학의 교수로 활동한 인물이다.
비엔나 학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학자는 카르납Rudolf Carnap(1891~1970)이다. 이 학단은 1930년부터 『인식』(Erkenntnis)이라는 정기간행물을 기관지로 삼고 있었지만, 그 간행물은 1938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히틀러 정권 치하로 병합되면서 중단되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비엔나 학파의 저명인사들은 각국으로 흩어져서 활동하게 된다. 카르납은 1931년부터 프라하에 정착하여 그곳의 독일계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었는데, 정치적으로 난경에 처하자 1935년에 유럽을 떠나 미국 시카고로 이주하여 교수생활을 새로 시작하였다. 1954년 이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생을 마감했다.
비엔나 학단을 중심으로 활동한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적 주요 업무는 어떤 웅장한 이론체계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진술되는 사상의 의미를 보다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하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일상 언어라는 것은 다의적이어서 애매하게 표현되어 사유에 많은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 실증주의는 이런 애매한 언어로 표현된 철학적 명제를 논리적으로 정밀한 언어로 환원함으로써 명제의 논리적 구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다.
논리실증주의의 첫 번째 작업은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무의미한 것으로 일언지하에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 우주의 존재 목적, 절대적인 신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 등 초감성적인 영역을 탐구대상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