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2018. 1. 17. 02:00




 

 

인류의 정의사회구현은 가능한 것인가

존 롤스의 의관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사회(국가)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 일찍이 세심하게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 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이다. 그는 『국가론』(Politeia)에서 ‘누가 정의로운 사람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정의(正義)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성의 분별력이 달리는 사람은 ‘정의’를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정의를 쉽게 알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플라톤은 우선 덩치가 커서 식별하기 쉬운 정의로운 국가를 논리적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생산자 계급, 무사 계급, 통치자 계급이 맡은 바 업무를 질서 있고 통일적인 조화로서 수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롤스의 정의관은 플라톤의 입장과 다르다. 롤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구현된 정의가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실질적인 기회평등을 보장하여 각자가 최선의 자아실현을 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본 것이다. 그러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의 기본구조가 공정한 원칙에 입각해서 짜여져야 하고, 다음으로는 모든 제도가 공정한 원칙에 따라서 정립돼야 한다고 롤스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는 학자는 사회의 기본구조를 위한 규범을 밝힐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여야 한다. 정의의 원칙이란 규범체계에 있어서 직위와 직책이 규정되고, 그에 대한 책임과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여러 제한사항을 정식화하는 것이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의 원칙은 인간의 삶에 미리 주어져 있다고 보지 않고, 인간이 주체적으로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에 의하면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한 정의사회의 원칙은 원초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로부터 나온다. 즉 정의사회의 원칙은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대표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고 타당성이 있는 공동체의 기본조건을 규정하기 위해 채택하는 원칙들이다. 사회정의의 원칙은 두 측면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 그것이다.

 


첫째,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기본적인 자유란 요컨대 정치적 자유(선거권과 피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사유재산 및 신체의 자유, 그리고 법의 테두리로 규정되어 있는 바 부당한 체포 및 구금을 당하지 않을 자유 등이다. 정의로운 사회의 시민들은 누구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둘째, ‘차등의 원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사회적 내지 경제적 불평들을 규정하는 체계를 말하는데, 소득 및 재산의 분배와 권한, 책임과 명령계통 등에서 차등을 두는 규정이다. 롤스는 첫 번째의 기본적인 자유에 관한 평등의 원칙을 설정하였지만,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분배문제에 있어서는 차등을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의 차등은 직위와 직책상의 차별이 아니라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결부되는 특권이나 부, 혹은 과세에 대한 부담, 강제적 봉사 등의 이득과 부담을 달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등이 적용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 배분에 있어서 더 많은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차등의 원칙’은 다시 “기회균등의 원칙”과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으로 세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회균등의 원칙’은 일률적인 분배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에게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정당한 경쟁조건을 마련하여 실질적인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특수한 이익을 가져오는 직책에 오르는 것을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실행될 수 있도록 한다든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함에 있어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불평등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의한 것이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

 

다음으로 ‘최소 수혜자 최대 이익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하고, 이들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균등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원칙에 근거해서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기 힘든 빈민이나 실업자, 노령이나 장애인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역차별적(逆差別的)인 분배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역차별적 분배란 이들에게 무상교육이라든가, 각종 연금을 통한 생계유지라든가, 최대한의 의료보장 등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정의의 원칙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런 원칙들이 요구하는 것 간에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해서 롤스는 충돌을 해결하기에 필요한 우선순위의 규칙을 마련한다.

 

첫 번째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두 번째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분배에 있어서 ‘차등의 원칙’에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이는 부와 소득의 분배 및 권력의 계층화는 반드시 동등한 시민권의 자유와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한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정의사회 구현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유는 사회적 경제적 이익과 교환될 수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의 ‘차등의 원칙’은 효율성이나 이익의 극대화를 동반하는 어떠한 원칙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또한 ‘차등의 원칙’에서 ‘기회 균등의 원칙’은 ‘최소 수혜자 최대이익의 원칙’에 우선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롤스의 정의론은 평등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공정한 사회를 이루어 모두가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비롯하여 불공정한 사회문제들이 우후죽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롤스는 정의의 원칙을 제시하여 수정자유주의를 옹호하게 됐던 것이다. 특히 사회구성원의 기본적인 자유가 평등하게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국가의 개입을 인정하게 되고, 국가의 업무란 누진세, 상속세, 직접세를 늘려 경제적 자본을 확보하여 이를 사회구성원들의 복리증진에 힘쓰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공정한 정의사회구현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 롤스의 입장이다.

Posted by 천연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