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아프간-소련 전쟁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인접국 소련은 아프간 내부의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자국의 영향력이 상실되고 이슬람 인구가 밀집된 소련남부의 공화국들로까지 그 여파가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결국 소련은 1979년 12월 27일 기존 정권 수호라는 명분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 침공을 개시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민 대통령을 사살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소련 전쟁이 개시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에 성공한 소련은 인민민주당 당내 권력투쟁 과정에서 패해 체코 영사로 밀려난 바브라크 카르말Babrak Karmal을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새로운 친소련 공산 정권을 수립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공산정권을 상대로 저항하던 무자헤딘 반군 게릴라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소련군 및 친소 카르말 정부군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무자헤딘은 산악지대가 많은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을 이용해 산악전과 게릴라전 형태의 전투 방식으로 소련군과 카르말 정부군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이때 수백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은 소련군의 반군 진압작전을 피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도피했다. 소련군 침공 후 게릴라군이 대부분의 농촌지역을, 소련군이 도시지역과 지방수비대 부근지역을 나누어 지배하며 대치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소련은 막대한 전비를 쓰고 병력도 쏟아부었지만 전세를 회복하지 못하자 1985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 철수를 고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1988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군 병력 철수를 시작해 이듬해인 1989년 완료함으로써 아프간-소련 전쟁은 소련군의 퇴각으로 막을 내렸다.
나지불라-무자헤딘 내전
그러나 카르말에 이어 집권한 친소 정권인 모하마드 나지불라Mohammad Najibullah 정권이 소련군 철수 이후에도 반군을 궁지에 몰아넣고 주요 도시들을 계속 지배하려 하자 나지불라 정부군과 무자헤딘 반군 사이의 내전이 계속되었다. 내전 초기에는 주둔 소련군이 두고 간 무기들과 소련의 추가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우세했지만 무자헤딘이 산악지대를 거점삼아 강력한 게릴라전으로 저항하면서 나지불라 정부군이 밀리기 시작했고, 무자헤딘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정부군의 공군기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민간에 대한 약탈과 강간, 방화 등이 자행되면서 나지불라 정부는 국민들의 민심마저 잃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정부군은 패퇴를 반복했고 무자헤딘에 투항하거나 탈영하는 장병들이 늘어났으며, 1991년 소련마저 붕괴되면서 지원이 끊기는 등 악재가 계속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무자헤딘은 점차 세력을 넓혀 카불을 제외한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고, 마침내 1992년 4월 25일 나지불라 정권의 최대 거점인 수도 카불의 점령에 성공하면서 결국 나지불라 정권은 붕괴되고 14년(1978~1992)간 계속된 장기간의 내전은 무자헤딘측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200만 명이 사망했고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토는 폐허가 되는 참화를 겪었다. 종전 후 이슬람 집권평의회 의장 모자데디는 5월 내각을 발족시키고, 6월 랍바니Burhanuddin Rabbani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12월 랍바니는 임기 2년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