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 인류의 생사를 가늠하는 개벽
각색 성씨가 이렇게 분포돼서 여기도 지금 여러 성씨가 뭉치지 않았는가. 여기 앉았는 사람들도 다 각기 5천년, 6천년 전 조상 할아버지가 있다. 그 조상 할아버지가 없으면 내가 없다. 5천년, 6천년 전 조상 할아버지가 그 다음 대를 전하고, 또 그 다음 대를 전해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걸 유전인자라고 그러잖는가. 그 유(遺) 자가 귀할 귀(貴)에다가 책받침(辶)을 한 자인데, 그게 끼칠 유(遺) 자다. 알아듣기 쉽게 물려줄 유(遺), 물려받을 유(遺) 자다.
그렇게 여러 천년을 물려주고 물려받았다. 내 몸뚱이는 우리 아버지한테 물려받고,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물려받고,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또 아버지는 내게 물려줬다. 우리는 조상의 그 유전인자, 정자를 물려받았다. 안(安) 가의 유전인자를 받으면 성을 안가라고 한다. 박(朴) 가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으면 그건 박가다. 그건 누가 죽인다 해도 박가다
누가 “너 박가라고 안 하면 내가 죽이들 않는다. 박가가 아니라고 해라.”라고 해도, “나는 박가 아버지로부터 났으니 죽어도 박가가 될 수밖에 없다. 죽어도 난 박가밖에 안 될 게다.”라고 한다. 그게 참말이다. 누구도 자기 유전인자, 5천년, 6천년 전 핏줄, 그건 절대로 못 바꾸는 것이다. 저 미물곤충, 초목도 무엇도 다 그렇다.
내가 요새 이런 얘기도 한다. 콩알캥이가 그 껍데기를 새까맣게 입은 것은 검정 밤콩이라 하고, 붉은 옷을 입은 것은 대추밤콩이라고 한다. 그 구별을 콩 까풀로 한다. 검정 밤콩은 만년을 가도 검정 밤콩이다. “너,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내가 죽여버린다.” 해도 도저히 안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도 유전인자를 바꿀 수는 없다. 그걸 바꾸면 씨가 딴 씨가 돼 버린다. 그렇게 다 각자의 5천년, 6천년 전 조상이 계계승승 내려와서 이번 가을철에 각색 혈통이 매듭을 짓는다.
봄에 씨를 뿌려서 여름 내 길러서 가을철에 결실을 한다. 똑같이 봄부터 출발을 해서 컸는데 결실을 못 하는 것도 있다. 빈 쭉정이도 있고, 30% 여무는 놈도 있고, 50% 여무는 놈도 있고, 70% 여무는 놈도 있고, 80% 85% 각양각색으로 알캥이가 여문다. 이번에는 사람도 그것하고 똑같다.
어째서 그런가. 5천년, 6천년 내려오면서, 각기 조상들의 행동이 다를 것 아닌가. 사람 속이고, 도둑질하고, 누구 음해하고, 뭐 별별 건이 다 있다.
우리 클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하나만 예를 들어 줄 테니 들어 보아라. 그 당시 과부(寡婦) 서리라고 하는 게 있었다. 과부 서리는 어떤 것이냐. 그때는 어수룩한 세상이 돼서 가마 같은 것도 없었다. 내가 지금 여든네 살이니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사람 아닌가. 내가 열 살에 철을 알았다 하더라도 75년 전 얘기를 하는 것이다.
과부 서리를 어떻게 하느냐? 과부도 많았지만 마누라 없는 남자도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 세상에도 그렇게 많았다. 그 때에는 이렇게 새끼로 엮은, 벼 담을 때 쓰는 섬이라고 하는 게 있었다. 그 섬하고 자루를 가지고서 서너 명이 과부 서리를 하러 간다. 껌껌한 밤에 문 열고 들어가서 자루로 과부를 뒤집어 씌워서 자루에 담아가지고 섬에다 둘둘 말아 떠메고 온다. 그러니 그 과부가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가. 동서남북 사방 아무것도 모른다. 과부 하나를 지게에다 지고, 아니면 등에다 메고 온다.
그렇게 몇 십리를 와서는 방에다 풀러놓고서 가서 밥을 지으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장가도 들고 그랬다. 그렇게 살다가 정자하고 난자하고 만나지면 새끼도 낳을 것 아닌가.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참 윤리적으로, 사회 도덕상으로, 여러 가지 측면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얼마고 있었다.
남 죽이는 데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다. 음해해서 죽이고 별별 건이 다 있었다. 헌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서 신명이 되면, 그 신명들은 절대로 잘못한 것을 용서를 안 한다. 그래 도덕률을 바탕으로 해서, 신명들이 좋은 일 못된 짓 한 것을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질서정연하게 다 정리를 한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적덕가(積德家)의 자손이 들어왔다 나가려 할 것 같으면 ‘너는 여기를 떠나면 죽느니라.’ 하고 뒤통수를 쳐서 집어넣고, 적악가(積惡家)의 자손이 들어오면 ‘너는 여기 못 있을 데니라.’ 하고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라고 하신 것이다. 여기가 열매를 맺는 곳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사람 알캥이를 추리는 곳이다. 또 지금이 그런 시기다.
이번은 천지에서 생사를 가름하는 때다. 사실 죽을 사람, 살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건만 그냥 내던져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알고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천지의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 결실을 함과 동시에 역사 문화도 열매기를 맺는다. 인류 문화라는 것이 하늘 이치보다도 더 중하고 땅 이치보다도 더 중하다. 이번에는 인류 문화가 아주 극치로 발전을 해서 천리와 지리도 정복할 수 있는 그런 대문명이 열린다.
정성이 지극하면 척신도 물리친다
헌데 사람이 정성이 지극할 것 같으면, 우리 신도들의 정성이 지극하면 척신도 물리칠 수 있다. 그저 알아듣기 쉽게 어떤 사람이 천냥 어치 척이 있다면, 천냥 어치, 만냥 어치 정성을 가지고 천냥 어치 되는 척을 물리쳐 줄 수 있다. 여기 있는 우리 신도들이 “내가 저 사람을 꼭 살려야 되겠다.”고 할 것 같으면 여간해서 척이 덤비지 못한다.
나는 이런 것을 봤다. 하나 예를 들어서 꼭 죽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천지의 큰 기운을 가진 사람이 그 사람을 반드시 살려야겠다고 착수를 하면, 저승사자가 그 사람을 절대로 못 더불고 간다. 사자가 감히 덤빌 수가 있는가. 그 정력가 때문에 사자도 포기하고 못 더불고 간다. 내가 그런 정도만 얘기하고 만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상제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가. “정성이 지극할 것 같으면 천지에서도 어쩔 수가 없다.” “봐 주는 수밖에 없다, 한두 번은.”
그러니까 우리 신도들의 성불성(誠不誠), 정성스럽고 정성스럽지 못함에 따라서, 아무리 조상의 업적을 바탕으로 생사판단이 된다 하더라도 그 척을 좀 감해서 좋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